“대체 원유 잡아라”… 韓-中-日-英 각료들 중동서 외교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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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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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석유 금수 조치 실행을 앞두고 원유 확보를 위한 세계 각국의 ‘석유 외교전’이 시작됐다. 미국의 이란 제재 동참 압력이 본격화되면서 아시아와 유럽 각국의 총리와 장관들이 잇달아 중동 주요 산유국을 방문해 이란 석유를 대체할 수입처를 찾고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석유 외교전에 나선 것은 일본이다.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상은 8일부터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3국을 긴급 방문해 원유 추가 공급 약속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겐바 외상은 특히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인 카타르에서는 압둘라 알아티야 부총리와 공동 기자회견까지 열고 “필요한 만큼 원유를 공급받기로 약속받았다”고 밝혔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도 14∼19일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3국 순방에 나선다. 중국이 계약 조건을 둘러싼 이견으로 이미 1월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량을 기존의 절반 수준인 하루 28만5000배럴가량 줄인 만큼 원 총리가 순방국 정상들에게 원유 공급 확대를 요청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원 총리 방문에 맞춰 사우디 석유회사 사우디아람코와 중국 정유회사 시노펙은 하루 40만 배럴 생산능력의 대규모 정유공장을 건설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등 협력관계를 공고화하는 모습이다.

유럽연합(EU)이 23일 외교장관 회의를 열고 이란산 석유 금수 조치를 최종 결정할 예정인 가운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13일 사우디에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을 만나 양국의 관계 증진과 에너지 안보, 경제 문제 등을 논의했다.

다소 뒤늦게 대체 원유 확보전에 뛰어든 한국은 김황식 국무총리가 12일 중동 순방길에 올랐다. 김 총리는 16일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세계미래에너지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오만,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안정적인 원유 확보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사우디를 비롯해 한국의 주요 원유 수입국인 쿠웨이트, 카타르가 빠져 있어 다른 주요 인사가 곧 중동 산유국들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각국의 석유 외교전에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가 빠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는 사우디의 석유 증산 능력이 하루 약 230만 배럴 규모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전체 증산 능력의 약 63%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의 1일 증산 능력은 이란의 1일 원유 수출량(250만 배럴)과도 맞먹는다. 사우디 외에는 중동 주요 산유국 가운데 쿠웨이트(20만 배럴) 아랍에미리트(20만 배럴) 카타르(8만 배럴) 정도가 원유 증산능력을 갖고 있다. 숫자로만 따지면 이란산 원유 수입이 완전 중단된다 해도 이들 국가의 증산량만으로 부족분을 메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문배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럽은 아프리카, 러시아에서 이란 석유를 대체할 공급 물량을 확보할 수 있지만 한국 중국 일본 같은 아시아는 중동밖에 대안이 없다”며 “증산 능력이 압도적으로 큰 사우디가 석유 외교 전쟁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실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강행할 경우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벌어질 수 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이 수출하는 원유의 90%를 수송할 수 없다. 그러면 석유 외교 전쟁도 소용없어진다”고 지적했다.

한편 EU는 재정위기를 겪는 남유럽 국가들의 처지를 감안해 이란 원유 수입금지 조치 시행을 6개월 유예할 것으로 알려졌다. EU 관계자는 12일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이란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남유럽 국가들이 대체 공급처를 확보할 때까지 금수 조치를 6개월 정도 늦출 것”이라며 “23일 EU 외교장관 회의에서 이런 방침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이란 제재 연기 소식에 따라 12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는 전날보다 1.77달러 내린 배럴당 99.1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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