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항생제도 두 손든 ‘슈퍼버그의 공습’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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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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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서 年 2만5000명 K폐렴구균-NDM1 등에 감염 사망“항생제 남용국가 더 심각… 신약개발 절실한데 투자 꺼려”

‘매우 건강했던 초등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40도에 가까운 열 때문에 병원을 찾는다. 어떤 항생제를 처방해도 아이의 열은 낮아지지 않는다. 결국 아이는 고열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패혈증으로 사망한다.’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다제내성균), 이른바 ‘슈퍼버그’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는 장면이 포스트 항생제 시대에 일어날 수 있다. 의학 전문가들은 인류가 개발한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들의 증가와 이를 치료하기 위한 신약 개발 노력의 부족으로 어떤 항생제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슈퍼버그 감염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항생제 남용이 심각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유럽질병통제예방센터(ECDC)는 17일 슈퍼버그로 인한 K폐렴구균에 감염된 유럽내 패혈증 환자의 절반은 인류가 개발한 항생제의 마지막 보루로 불리는 카바페넴으로도 치료가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 슈퍼버그는 2009년 그리스에서 발견된 뒤 불과 1년 만에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키프로스, 헝가리 등지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영국에서는 인도, 파키스탄에서 발견된 대장균의 변종으로 가장 강력한 항생제 카바페넴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신종 슈퍼버그인 NDM1(뉴델리 메탈로 베타 락타메이즈1)에 감염된 환자가 70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NDM1은 혈액을 통해 폐, 요도 등 장기를 동시 다발적으로 감염시켜 환자를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다.

또한 2010년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크게 확산된 슈퍼버그 E콜리 대장균 환자의 25∼50%는 대장균 분야의 가장 뛰어난 항생제의 하나인 레바퀸 항생제(플루오로퀴놀린)로도 치료가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슈퍼버그를 죽이기 위한 신약 개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개발을 위한 규제는 까다로운 반면 치료제의 효용 기간은 짧고, 사용 대상이 적다보니 이윤이 낮아 제약회사들이 개발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17일 제약회사와 함께 민관 합동으로 기금을 마련해 혁신적인 신약 개발과 필요한 연구를 지원하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U에서는 한 해 약 2만5000명이 어떤 항생제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슈퍼버그에 감염돼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슈퍼버그는 특히 유럽에서 항생제 남용률이 높은 국가로 분류되는 그리스, 키프로스, 이탈리아, 헝가리, 불가리아 등에서 높은 감염률을 보이고 있다.

마크 스프링거 ECDC 국장은 “상황은 매우 치명적이다. 슈퍼버그에 대한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라 피독 영국항균화학요법학회(BSAC) 회장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백신 연구와 개발에 크게 기여해온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같은 자선가들이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위한 ‘글로벌 협력 운동’을 이끌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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