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독재서 인권으로” 재스민 혁명은 진화중

동아일보 입력 2011-11-01 03:00수정 2011-11-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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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일부다처제 놓고 여성들 분노… 이집트선 시위 수감자 고문치사 논란 일부다처제 문제가 재스민 혁명 이후 이슬람과 서구식 민주주의의 양립 가능성을 점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을까.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무슬림 남성은 부인이 네 명까지 인정되지만, 부인들을 동격으로 동등하게 다뤄야 한다. 선물과 식사, 심지어 잠자리까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동일해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이슬람 지역에 속했던 리비아는 일부다처제가 드물었다. 42년을 통치했던 카다피 독재 정권하에서는 새로운 부인을 맞아들이려면 첫 번째 부인에게서 허락을 받아야 하는 등 제도가 복잡했고 일부다처제를 제한했기 때문에 일부다처제 가정이 매우 희귀한 경우에 속했다.

하지만 10월 23일 리비아 해방을 공식 선포하면서 무스타파 압둘잘릴 과도국가위원회(NTC) 위원장은 “앞으로 모든 입법은 샤리아를 토대로 이뤄진다”며 “두 번째 부인을 얻기 위해 첫 번째 부인에게 허락을 구하던 제도는 중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이에 리비아 여성들은 “또 다른 억압”이라며 분노하고 나섰다. 민주화 혁명 과정에서 직접 총을 들고 싸우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성들은 “첫 부인의 허락을 받도록 하는 제도가 없어지면 모든 남성이 여러 명의 부인을 거느리려 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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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NTC와는 달리 최근 치러진 혁명 후 첫 민주화 선거에서 1당을 차지한 튀니지 엔나흐다당의 라체드 간누치 대표는 “일처다부제 금지 법안을 변경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슬람과 모더니티 사이의 화해를 통해 온건하고 민주적인 이슬람을 향해 가겠다”는 게 엔나흐다당의 구상이다.

리비아의 일부다처제 허용에 대해 카다피 타도를 위해 힘을 모았던 국제사회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알랭 쥐페 프랑스 외교장관은 “여성의 존엄성 측면에서 리비아의 일부다처제 허용 결정은 문제”라며 우려를 표했다.

물론 압둘잘릴 위원장의 발언은 분열된 사회의 통합을 위해서는 이슬람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여건을 반영한 것이며, 이슬람주의자들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 발언이므로 과도하게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온건 이슬람 세력들은 재스민 혁명으로 초래된 권력 공백을 강경 이슬람 세력이 차지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혁명 기간에는 ‘독재 타도=민주화’라는 공식 아래 하나로 단결했을지라도, 1단계가 완료된 뒤의 상황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급진 세력의 집권 욕심을 잠재우려면 일단은 샤리아를 고수하는 고육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이슬람과 인권, 자유 등 민주주의 가치 사이의 조율이 불가피한 현실인 것이다.

시민들 사이에서 인권신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등 당초 반독재로만 제한했던 민주화의 외연이 확장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집트에서는 콥트 교인들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간의 충돌과 관련해 체포돼 수감됐던 20대 청년이 10월 27일 교도관들에게 물고문을 당해 숨졌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시위대는 청년의 시신을 들고 타흐리르 광장을 행진하면서 잔혹행위에 대해 항의를 표했다고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독재정권 축출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이뤄낸 아랍 민중들이 여권 신장, 고문 근절 등 보편적 인권 가치의 착근을 위한 두 번째 단계의 투쟁에 접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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