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월급-연금 반토막… 前시장들 ‘空約’에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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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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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경기침체 늪에서 파산 신청한 센트럴폴스市 가보니…

《 미국 뉴욕에서 북동쪽으로 자동차로 4시간 반 거리에 있는 로드아일랜드 주의 인구 2만 명의 소도시 센트럴폴스 시(市). 지난주 찾은 도시의 입구에는 ‘자랑스러운 과거, 희망찬 미래(A proud past, A promising future)’ 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막상 도시의 어느 곳에서도 희망찬 미래는 찾아볼 수 없었다.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 기차역, 문을 닫아버린 주민센터와 도서관들로 마치 ‘유령의 도시’를 떠올리게 했다. 센트럴폴스 시는 지난달 1일 적자를 견디다 못해 법원에 파산신청을 냈다. 》
연금삭감 설명회… 분노와 허탈 퇴직한 센트럴폴스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7월 19일 현지 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연금 삭감 설명회에서 성난 표정으로 로버트 플랜더 파산관재인을 노려보고 있다. 프로비던스저널 홈페이지
연금삭감 설명회… 분노와 허탈 퇴직한 센트럴폴스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7월 19일 현지 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연금 삭감 설명회에서 성난 표정으로 로버트 플랜더 파산관재인을 노려보고 있다. 프로비던스저널 홈페이지
25년을 센트럴폴스 소방서에서 근무한 존 가비 소방대장(54)은 요즘 줄어든 급여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매달 1600달러(187만 원)가량을 받았던 보너스는 올 초부터 300달러로 줄어들었다. 매주 400달러의 초과근무수당을 받았으나 이마저도 뚝 끊어졌다. 시 재정이 바닥나 파산신청을 하는 바람에 당장 공공부문이 대대적인 긴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는 두 자녀 교육비를 당장 크게 줄여야 하고 은퇴 이후 삶의 계획도 다 바꿔야 할 지경”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국인들이 꿈꾸는 전형적인 은퇴 생활은 이미 먼 얘기가 됐다. 은퇴 후 일자리 걱정에 잠을 이루기 어렵다. 퇴직공무원에 대한 연금과 건강보험료 지원액은 기존 퇴직자를 포함해 이미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경찰서장을 지냈던 남편이 사망한 뒤 연금을 대신 받아왔던 제니 갈리건 씨(78)는 매년 2만4000달러가량이던 연금이 1만6000달러로 줄어들 지경에 처했다. 그는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을 정도지만 시에서 줄 돈이 없다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체념한 모습이었다. 그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며 연금이 반 토막 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연금 및 공무원 급여 삭감은 로드아일랜드 주 연방법원 판사 출신으로 찰스 모로 전 시장을 대신해 파산관재인으로 취임한 로버트 플랜더 씨의 작품이다. 그는 올 초부터 잇달아 시 공무원들과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연금과 급여 삭감 없이는 파산이 불가피하다고 설득해 왔으며 7월 18일 최후통첩을 했다.

○ 불안한 시민들…“여기가 미국 맞나”

시 파산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공공 부문 종사자이지만 시민들도 불안한 미래를 두려워하긴 마찬가지다. 공공도서관은 운영자금이 없어 공식적으로는 폐관했고, 주민들이 1주일에 두 번 자원봉사자로 나와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열고 있다. 도서관 앞에 사는 마크 씨(42)는 두 자녀와 아내를 데리고 외출하는 길에 만난 기자에게 “전기가 끊어져 친척집에 가는 길”이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놀아주곤 했는데 저렇게 문을 닫아버렸다”고 말했다. 마크 씨는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고 말했다.

역시 문을 닫은 퇴직군인 박물관 앞에 사는 숀 씨(48)는 지키지 못할 달콤한 약속을 했던 전 시장들을 성토했다. 그는 “전 시장들이 들어오는 수입이 뻔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많은 연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며 “미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얘기하겠냐”고 하소연했다.

실제 이곳의 재정적자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다. 기업들이 도시를 하나둘 떠나면서 도시의 세수가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전 시장들은 문제점을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해결책을 내놓는 대신 문제 해결을 계속 미루는 ‘폭탄 돌리기’를 해왔다. 어느 시장도 세금 인상과 기업 유치와 같은 재원 확보책을 내놓지 않은 것이다. 그 대신 공무원연금 및 건강보험료 지원 대폭 인상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런 포퓰리즘적인 정책으로 공무원 연금의 누적 적자액은 지난해 기준으로 48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올해 시 예산이 2100만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쉽게 가늠이 된다. 학교를 운영할 재정이 바닥나자 로드아일랜드 주정부에 손을 내밀어 전액을 지원받기도 했다. 그러나 재정적자 비율이 올해 22%까지 치솟은 데다 역시나 적자에 허덕이는 주 정부마저 지원을 포기하자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됐다.

○ 미국 재정적자의 축소판

‘미래’를 잃어버린 도시 찰스 모로 센트럴폴스 시장 재직시절 도시 입구에 세워진 ‘자랑스러운 과거, 희망찬 미래’라는 내용의 표지판. 자랑스러운 과거는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재정적자로 희망찬 미래는 도시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센트럴폴스=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미래’를 잃어버린 도시 찰스 모로 센트럴폴스 시장 재직시절 도시 입구에 세워진 ‘자랑스러운 과거, 희망찬 미래’라는 내용의 표지판. 자랑스러운 과거는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재정적자로 희망찬 미래는 도시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센트럴폴스=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파산관재인을 맡고 있는 플랜더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자치단체 파산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근래엔 3년 전 캘리포니아 주 발레오가 파산한 게 유일하다. 하지만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적자, 경기 침체, 과도한 연금혜택 등으로 지방도시의 파산은 계속 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현 상황에 대해 매우 답답해하며 “재정적자를 겪고 있는 연방정부도 크게 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2000년대만 해도 파산에까지 이르는 도시는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최근 연구기관과 언론 등에서는 파산 도시 후보들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적자에 허덕이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지원이 크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센트럴폴스=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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