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무허가 ‘농민공 유치원’ 무더기 폐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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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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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잘 곳이 사라졌는데… “이젠 날마다 아빠 보겠네” 철없는 아이들 마냥 좋아해

8월 31일 베이징 다싱 구 시훙먼의 시양양 유치원 입구에 ‘9월 1일부터 수업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8월 31일 베이징 다싱 구 시훙먼의 시양양 유치원 입구에 ‘9월 1일부터 수업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시양양(喜洋洋)유치원을 찾은 건 지난달 31일이었다. 베이징(北京) 도심에서 택시를 타고 남쪽으로 40여 분, 다시 삼륜차로 갈아타고 먼지가 풀풀 나는 길을 20분 정도 가자 유치원이 있는 다싱(大興) 구 시훙먼(西紅門) 지역이 나왔다. 베이징의 대표적 슬럼가다.

이날은 유치원의 마지막 수업이 열린 날이었다. 다싱 구 정부는 이곳 31개 무허가 유치원에 9월 1일부터 무조건 문을 닫도록 지시했다. 판훙옌(潘洪艶) 원장은 “당장 내일부터 아이들이 놀 곳도, 점심을 해결할 곳도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무허가 유치원은 ‘흑(黑)유치원’, 줄여서 ‘흑원’이라고도 불린다. 일거리를 찾아 시골서 올라온 농민공(農民工) 자녀들이 주로 다닌다. 변변한 놀이기구는 없지만 부모들이 일 나가 있을 동안 애들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한 달 수업료는 350위안(약 5만8000원). 시훙먼에 단 하나 있는 공립 유치원에 다니려면 최소 1500위안(약 25만 원)을 내야 한다. 한 달에 3000위안도 안 되는 농민공들의 수입을 감안하면 절반이 넘는 돈이다. 판 원장은 “시훙먼에서만 6000여 명의 아이가 무허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그나마 저녁에 집에 돌아갈 수 있는 애들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시양양에서 만난 자오멍커(趙夢柯·6)는 아예 유치원에서 살고 있다. 아빠는 잔업이 있는 공장들을 찾아다니느라 밤 12시가 다 돼 들어오고 엄마는 다른 곳에 살기 때문이다. 철없는 멍커는 유치원에 못 온다고 하자 “날마다 아빠를 만날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폐원 지시는 4월 다싱 구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에서 비롯됐다. 상부의 질책을 받은 구 정부는 소방기준에 맞지 않는 무허가 건축물에 대한 집중 단속에 나섰다. 당국은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 준다고 했지만 이날까지도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지시를 어기면 즉각 강제집행에 착수할 것이라는 으름장만 있었을 뿐이다. 기자가 시양양을 찾았을 때도 공안 두 명이 판 원장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주민들 사이에선 이곳이 재개발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폐원 조치는 신도시 개발을 위한 예정된 수순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농민공은 사실상 중국 경제의 바닥을 지탱한다. 당국은 대도시의 슬럼화로 이어지는 농민공의 도시행을 반가워하지 않지만 시골에서 먹고살 게 없어 도시로 향하는 농민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제 유치원을 빼앗긴 다싱 구의 농민공 자녀들은 먼지가 풀풀 나는 길에서 시간을 보내며 부모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계획경제와 자본주의를 결합했다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의 가격을 알려줬을망정 그것들의 가치는 가르쳐주지 않은 듯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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