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트리폴리 엑소더스… 유령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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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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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리비아 트리폴리 시내는 고요함과 불안함, 적막감 등이 혼재했다. 시 외곽지역의 거리에서는 사람을 보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트리폴리 서부 구트샤알 지역은 사람 키 높이까지 차오른 쓰레기 더미로 몸살을 겪고 있었다. 상점은 모두 셔터를 내렸다. 이날은 일요일이지만 이슬람 국가에서는 공휴일이 아닌데도 구멍가게 하나 연 곳이 없었다.

도심 건물들은 총알 자국이 선명했다. 반(反)카다피군이 교전 당시 옥상에 숨어 있던 정부군 측 저격수를 노린 듯 건물 상층부마다 총알의 흔적이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지난 주 시내 주요 3개 병원이 집계한 사망자는 230여 명에 이른다. 시내 중심가에는 외신기자들과 총을 든 반군이 시민보다 훨씬 많았다. 시민 상당수가 내전 상황을 못 견디고 도시를 탈출해버린 것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수만 명을 모아놓고 집회를 했던 도시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트리폴리는 텅 빈 유령 대도시가 돼 버렸다. 도심의 한 블록 전체에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기자를 안내한 리비아의 공무원 아흐메드 다와 씨는 “모두 집에 머물고 외출을 삼가거나, 차를 몰고 이미 도시 밖으로 빠져나갔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반군들이 설치한 시내 검문소에서는 무장 반군들이 외지인들의 차량을 일일이 세워놓고 탑승자의 신원을 체크했다. 한 반군 청년은 기자들에게 “Libya is free now(리비아는 이제 자유다)”라고 외쳤고 한 외신기자가 “Congratulation(축하한다)”이라고 화답하자 반군들이 환히 웃으며 기뻐했다. 그 밝은 표정 속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뭔가를 이뤘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겉만 보면 트리폴리는 평화와 안정을 찾은 듯 보였다. 카다피의 요새였던 밥알아지지아, 그린광장 등 이번 내전을 상징하는 주요 장소는 이미 무장한 반군의 호위 없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됐다. 지나는 사람들의 걸음걸이 역시 누구에게 쫓기고 있거나 무엇을 두려워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외신기자들이 주로 묵는 코린시아호텔의 한 경비원은 “이제 트리폴리는 안전해졌다.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아직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외신기자 상당수는 방탄복을 입고 다녔다. 약 10분에 한 번 정도 총소리가 들렸다. 대부분 반군들의 축포 소리지만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총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며 깜짝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트리폴리의 아부슬림 등 일부 지역은 거리 곳곳 옥상에 저격수가 배치돼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시민들의 관심은 온통 ‘카다피 타도’에만 집중된 듯했다. 반군의 삼색기 문양 깃발은 리비아 전역에서 수도 없이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삼색기 모자와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굿바이 카다피”, “생큐, 나토” 등의 거리 낙서는 예사였다. 트리폴리의 주요 호텔인 래디슨블루는 호텔 정문을 들어설 때마다 사람들이 카다피의 사진이 박힌 카펫을 두들겨 밟도록 해 놨다.

기자는 이날 오전 5시 반경 리비아 내륙지역의 국경마을 나루트를 출발했다. 리비아 반군과 튀니지 기자들이 동승한 승용차가 맨 앞에 서고, 취재진이 가운데, 리비아인 보안요원 차량이 뒤에 서 하나의 ‘호위 행렬’을 이뤘다. 취재진은 차를 타고 4시간을 꼬박 달려 디지 알조시 자위야 잔주르 등을 거쳤다. 나루트에서 트리폴리까지 약 350㎞ 구간에서 취재진이 거친 반군의 검문소는 모두 20개에 육박했다. 검문소의 반군들은 대체로 여유로운 분위기였지만 일부는 “○○지역에는 시체가 쌓여 있다”, “저격수가 민간인도 가리지 않고 쏜다”고 경고하며 취재진을 긴장케 했다.

지난 6개월 내내 정부군과 반군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벌어졌던 자위야는 이 가운데 내전의 상처를 가장 많이 안고 있었다. 건물 하나당 총탄 자국이 평균 20∼30개씩 박혀 있고 포탄 공격에 형체를 알 수 없이 일그러져 마치 심하게 부패된 거대 공룡의 시체 같은 건물도 보였다. 도로 사정은 내전을 감안하면 양호한 편이지만 거리 곳곳의 주유소나 각종 상점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다만 교전이 치열하지 않았던 소도시에선 차분히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리비아인들의 모습이 관찰되고 있었다. 27일 나루트의 중심가는 라마단 마지막 휴일을 맞아 이프타르(금식 후 첫 식사)를 즐기는 시민들로 가득했고 마을 주민들은 빵집에 길게 줄을 늘어서거나 수박을 가득 실은 트럭 앞에 모여 담소를 나눴다. 시내 담벼락마다 “Thanks Nato, you've saved our lives(나토, 우리를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Thank you Sarkozy, Peace is our demand(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고맙습니다. 평화는 우리의 바람입니다)”라는 낙서가 가득했다.

트리폴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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