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가계도는 ‘뿌리찾기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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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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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부부-동성커플, 정자기증 대리모 입양 선택 부쩍

로라 애시모어 씨(38)와 제니퍼 윌리엄스 씨(50)는 자매다. 몇 년 전 결혼한 애시모어 씨는 임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윌리엄스 씨에게 대리모가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윌리엄스 씨는 정자은행에서 제공받은 정자로 4년 전 딸 맬러리를 낳아 애시모어 씨 부부에게 입양시켰다. 윌리엄스 씨는 궁금해졌다. “나는 맬러리의 엄마일까, 이모일까.”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레즈비언인 윌리엄스 씨가 6년 전 정자를 기증받아 낳은 아들 재미슨(6)과 맬러리의 관계 때문이었다. ‘둘은 형제(half siblings)일까, 사촌일까.’ ‘정자 제공자는 가계도 어디에 놓아야 하나.’

불임부부나 동성커플이 정자 기증, 대리모, 입양 등을 통해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미국의 가계도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4일 ‘오늘 날 가계도(family tree)는 얽히고설킨 숲(forest)과 같다’고 보도했다. 오랫동안 혈연과 결혼 등 큰 ‘뿌리’에 따라 가족을 규정짓던 계보학자들은 이제 다양한 방법으로 생성된 ‘잔가지’들에 주목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에는 유독 이런 설정이 많았다. 레즈비언 커플이 기증받은 정자로 낳은 아이들이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는 내용의 영화 ‘키즈 아 올 라잇’은 미국 가족의 현실을 반영한다.

달라진 현실은 교육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중학 사회시간에 학생들이 자신의 가계도를 설명하는 모습은 더는 보기 힘들게 됐다. 또 ‘brother(형제)’나 ‘sister(자매)’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기초 수업에서밖에 볼 수 없다.

미국 인구조사국은 지난해 결혼을 통해 이룬 가구 수가 처음으로 절반 이하인 48%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독신, 한부모, 동성애, 동거 등으로 이뤄진 비혼(非婚)가구가 전체의 과반이 된 것.

동성 커플이 대리모 정자 기증 입양 등을 통해 가정을 이루는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미국 최대 정자은행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 정자은행은 2009년 레즈비언 고객 비율이 3분의 1에 달한다고 밝혔다. 10년 전 7%에 비해 5배 가까이 늘어난 것.

최근 일부 지역의 출생증명서에는 부부 사이의 일반적 출산 이외에도 어떤 방법을 통해 임신해 출산했는지를 묻는 항목이 추가됐다.

생물학적인 부모가 사망해 상속 문제를 논의해야 할 때 복잡한 가계도는 더 복잡한 문제를 가져온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됐을 때 일어난다. 수 바텔과 밥 바텔 씨 부부는 자연임신으로 낳은 아이 애디(8)와 정자기증을 통해 낳은 도리(5) 외에 최근 2명의 남자 아기를 입양할 계획이다. 생물학적 관계는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부부지만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고려해 두 가지 버전의 육아일기를 준비했다. 하나는 아이의 출생부터 성장과정에 바텔 씨 부부만이 등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이의 출생과정에서 생물학적 부모들의 이야기를 포함시킨 것이다.

한편 다른 부부에게 정자를 기증해 주기도 한 밥 씨는 “내가 기증한 정자를 통해 태어난 아이는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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