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100일]“日製 대신 Made in Korea”… 원천기술 中企 제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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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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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800개 기업 설문-현장조사

《 3월 11일 일본 동북쪽 바닷가에서 발생한 지진은 미야기(宮城), 후쿠시마(福島), 이와테(巖手) 현의 해변 마을을 초토화시켰다. 자동차(도요타 닛산 혼다), 전기(미쓰비시), 전자(소니 무라타제작소), 에너지(미쓰비시화학 신에쓰화학) 분야의 수많은 일본 기업도 줄줄이 피해를 봤다. 동아일보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8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본 기업의 피해는 한국 산업에 ‘양날의 칼’로 작용했다. 일본에서 부품을 수입하기 힘들어지고 수출도 예전 같지 않으면서 상당수 기업이 피해를 봤다. 하지만 원천기술을 보유한 국내 중소기업에는 큰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한국산 부품소재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된 것이다. 》
○ “일제(日製) 대신 한국산으로”

16일 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LMS 공장에는 방진복을 입은 직원 4명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휴대전화나 TV에 사용되는 발광(發光) 부품을 고객사 주문에 맞춰 자르고 포장했다. 이 공장은 동일본 대지진 직후 2교대로 24시간 가동되고 있다. 그래도 일본과 미국에서 쏟아지는 주문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광학부품은 일본의 아사히글라스가 세계시장의 90%를 차지했고 LMS는 10% 정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전례 없던 변화가 일어났다. 6월 현재 LMS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로 올랐다. 올해 말이면 30%까지 높아질 것으로 회사 측은 전망했다.

시장 확대 조짐은 대지진 직후부터 보였다. 지진 발생 이틀 후 관양동 LMS 5층 회의실에는 일본 바이어들로 가득 찼다. 아사히글라스가 지진해일(쓰나미) 피해를 보자 대체품을 확보하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며칠 후에는 소니 파나소닉 파이오니어 같은 회사들이 “LMS와 거래를 트고 싶다”고 연락해 왔다.

오영수 LMS 전무는 “일본 기업뿐 아니라 미국 컴퓨터업체 HP도 최근 구매 의사를 전해왔다”며 “일본 기업이 장악하던 시장을 기술력으로 어렵게 뚫어가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로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동차부품, 수도배관 기기, 산업기계, 공작기계를 만드는 대한특수금속(경북 고령군 다산면)도 특수(特需)를 누리고 있다. 이 회사 서갑성 부사장의 수첩은 일본 바이어들을 만나는 일정으로 빡빡하다. 서 부사장은 “기존 일본 딜러들이 물량을 더 많이 받아가려고 해 현재 시설의 생산량으로는 맞추지 못한다”고 말했다.

산업단지공단에선 제품을 사러 온 일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15일 경기 시흥시 시화공단에서 만난 일본 기업인 야마시타 데쓰로(山下哲郞) 씨는 “일본의 자동차부품업체들이 지진 피해를 보면서 타이어, 휠 같은 제품들을 한국에서 구매하려는 일본 바이어가 크게 늘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모든 중소기업이 동일본 대지진의 수혜를 본 것은 아니다. 실제 설문조사에서도 대지진 수혜 기업은 10%도 채 되지 않았다.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고 원부자재를 일본 이외 지역에서 가져오는 기술 중소기업이어야 이번 지진의 수혜를 누릴 수 있었다.

이경상 대한상의 산업정책팀장은 “일본 기업들이 부서진 공장을 다시 세우더라도 전력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생산 차질은 불가피하다”며 “이 때문에 대지진 수혜 기업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호황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피해, 생각보다 심하지 않아

자동차 튜닝용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인 경기 시흥시 정왕동 KIC는 동일본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았다. 전체 제품 중 약 40%를 일본으로 수출하는데 지진 직후 일본 구매가 뚝 끊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 충격을 상당 부분 흡수했다. 수출 주력 국가를 중국 대만 등으로 돌려 새로운 구매처를 뚫고 있기 때문이다. 엄태웅 KIC 사장은 “튜닝용품은 일종의 기호 제품이기 때문에 지진 직후 일본 수출이 40% 정도 줄어들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예년의 80∼90% 선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일본발(發) 충격이 그리 크지 않았거나 조기에 수습됐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아직까지 피해가 지속된다’고 응답한 기업은 전체 조사 기업 중 8.0%에 불과했다.

대전에서 액정표시장치(LCD)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인 에이치엔에스하이텍은 대지진 직후 일본 기업으로부터 ‘부품 인도가 늦어질 수 있으니 양해 바란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 후 한 달 정도는 부품 공급이 제때 안 됐지만 4월 중순부터는 정상적으로 되돌아왔다.

화학업종은 피해와 수혜 모두 예상보다 강도가 약했다. LG화학과 효성, 웅진케미칼 측은 “일본에서 수입하는 부품은 이번 피해에 거의 영향이 없었고 수출하는 제품은 일본과 겹치는 게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지진으로 일본 경제가 휘청거려도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일본 미즈호증권이 최근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일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포인트 떨어지면 한국 GDP 증가율은 0.13%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 ‘리스크 관리’에 눈뜬 기업들

LMS는 평상시 재고물량을 2개월 치 정도 둔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 이후 3개월 치로 늘렸다. 일본 제조업의 최대 강점 중 하나였던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JIT)’ 체제가 위기 시 얼마나 큰 약점으로 작용하는지 지켜봤기 때문이다.

설문 조사 결과 4개 기업 중 1개 기업은 이처럼 재난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수입처를 일본 이외 지역으로 다변화한 기업(6.8%)이 가장 많았고 이어 재고 수준 확대(6.1%), 수출시장 다변화(5.8%), 안전관리대책 강화(5.4%) 순이었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 독일 네덜란드 대만 등지에서 웨이퍼를 수입한 덕분에 일본에서 원재료 수입이 안 돼도 생산 차질을 피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원재료 수입처를 계속 다변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안양·시흥=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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