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공산당 90년]<上>‘혁명 발원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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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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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가 된 ‘평등’ 징강산 순례 발길

중국이 다음 달 1일 공산당 창당 90주년을 앞두고 ‘붉은 물결’로 출렁이고 있다. 전국의 ‘혁명 성지’에는 순례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90년간 이루어 낸 공산당 주도의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선전하기에 분주하다. 충칭(重慶)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를 연상시키는 대학생 하방(下放·농촌 등지로 내려가 주민을 계몽시키는 운동) 활동도 활발하다.

중국 공산당은 농민혁명을 성공시킨 데 이어 1978년 이후엔 중국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며 30여 년 만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공산당 90년이 남긴 과(過)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중국 안팎에서 적지 않다.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명분으로 한국전쟁(6·25전쟁)에 참여해 한반도 분단을 야기해 한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1950년대 말에는 대약진으로 약 3000만 명이 기아로 숨졌다. 이어 문화대혁명으로 10년간 참극이 빚어졌다.

중국 공산당 일당지배하의 중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놀라움과 경계심이 교차한다. 경제력 향상 등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주요 2개국(G2)으로 급부상한 것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급속한 세력 확장과 군사력 증강에 대한 경계심, 그리고 인권 등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 구현에 얼마나 동참할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지난달 31일 베이징(北京)에서 비행기로 2시간 반 걸려 도착한 장시(江西) 성 징강(井岡)산. 최고봉이 해발 1586m인 징강산은 높고 험한 산이 많아 사람이 사는 곳은 마치 우물(井)처럼 깊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징강산은 1927년 8월 1일 난창(南昌)봉기를 일으켰다 국민당군에 진압당한 주더(朱德)와 그해 9월 9일 후난(湖南) 성 창사(長沙) 등에서 추수 봉기를 일으켰다가 실패한 마오쩌둥(毛澤東)이 차례로 도피해 들어와 홍군을 창설해 공산당의 명맥을 이어간 곳이다. 1921년 상하이에서 창당한 공산당은 징강산이 없었다면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군에 괴멸됐을 수도 있다. 그래서 중국 공산당엔 ‘성지 중의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유격전이 치열했던 황양제(黃洋界) 등에는 국민당과 치렀던 전투 현장에 참호와 포대 등이 보존돼 있다.  
▼ 학교선 紅歌경연…TV선 혁명연속극…‘붉은 물결’ 뒤덮인 中 ▼

장시 성 난창 중심부 런민광장에 세워진 ‘8·1 기념탑’. 난창=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장시 성 난창 중심부 런민광장에 세워진 ‘8·1 기념탑’. 난창=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징강산에서 만난 베이징 시민 스중밍(石仲明·61) 씨는 “처음 성지를 찾아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사업을 하다 일시 고국을 방문을 했다는 50대 후반의 화교 여성 류야핑(劉雅平) 씨도 “이번이 처음”이라며 “험준한 산에서 홍군이 유격전을 벌이는 모습이 그려진다”고 말했다.

이튿날 찾은 곳은 1934년 10월 공산당의 9600km 대장정이 시작된 또 다른 ‘혁명 성지’인 장시 성의 루이진(瑞金). 오색홍기가 1년 내내 밤에도 내려지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홍도(紅都·붉은 수도)’로 불린다. 루이진은 징강산에서 쫓겨 온 마오 등이 1929년 2월 옮겨와 두 차례 중화소비에트 대표대회를 여는 등 공산당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처음으로 사회주의 통치를 시도했던 곳이다. 예핑(葉坪)과 사저우바(沙州패) 등에는 현 정부의 원시적 형태와도 같은 정부 청사들이 혁명 옛터로 보존되어 있다. 관영 신화(新華)통신도 1931년 11월 이곳에 세워진 ‘홍색중화통신사’에서 출발됐다. 그래서 루이진은 ‘공화국 요람’으로 불린다.

공산당이 국민당의 토벌에 쫓겨 1934년 10월 9600km 대장정을 떠나기 전까지 5년여 동안 머물다 장정에 나선 곳이기도 해서 루이진의 모든 초등학교 교명은 ‘창정(長征)○○○소학교’ 식으로 되어 있다.

1927년 8월 1일 주더 등이 ‘난창 봉기’를 일으켰다 국민당에 패퇴했던 난창에는 시 중심 런민(人民)광장에 53.6m 높이의 ‘바이(8·1) 봉기 기념탑’이 우뚝 솟아있다. 8월 1일은 인민해방군 창건일로 지정됐다.

○ 붉은 분위기 조성에 진력하는 중국

1차 소비에트 회의 열린 곳 중국 장시 성 루이진의 ‘예핑 혁명 유적지’에 보존되어 있는 ‘1차 소비에트 회의’ 개최지. 회의는1931년 11월 7일부터 20일까지 열렸다. 당시의 홍군 복장을 한 직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루이진=구자룡 특파원bonhong@donga.com
1차 소비에트 회의 열린 곳 중국 장시 성 루이진의 ‘예핑 혁명 유적지’에 보존되어 있는 ‘1차 소비에트 회의’ 개최지. 회의는1931년 11월 7일부터 20일까지 열렸다. 당시의 홍군 복장을 한 직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루이진=구자룡 특파원bonhong@donga.com
1일 저녁 베이징. 런민대회당에서는 “이곳은 강대한 조국. 태어나 자란 곳. 드넓은 대지 곳곳에 평화의 햇빛이 비친다”는 가사의 홍가(紅歌·붉은 가요란 뜻으로 혁명가요)인 ‘나의 조국’이 울려 퍼졌다. 많은 대학과 초중고교에서 창당 90주년을 맞아 홍가 경연대회가 한창이다.

공산당 창당 과정을 그린 영화 ‘젠당웨이예(建黨偉業)’의 흥행을 위해 이달 말 세계 동시개봉을 추진 중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중국 개봉도 뒤로 미뤘다. 베이징 소학교(초등학교)에서는 매월 한 차례 공산당기와 공청단기 게양식이 열린다. 학교마다 창당 관련 집단토론과 세미나도 홍수를 이루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과 중국중앙(CC)TV 등 관영매체도 특별 편성에 나섰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 6월 8일자 신문 1면의 7개 기사 중 4개가 창당 관련이다. 지난달 하순 현재 공산당 혁명 관련 연속극은 파악된 것만 40여 개다.

딱딱한 공산당 역사책이 최초로 100만 권 이상 팔려나가는가 하면 ‘창당 기념’이란 이름을 내건 판촉행사도 했다. 중국 당국은 창당 기념 분위기를 엄숙하고 경건하게 하기 위해 음란물을 단속하고, 영화 방송 감독기관은 혁명을 오락거리로 삼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같은 대대적인 혁명 분위기 조성에는 빈부격차 등에 따른 사회 불만을 달래고 일당독재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다. 지역 간, 계층 간 소득 격차와 만연한 부패, 부동산과 물가 급등 등으로 인한 서민들의 좌절과 불만을 ‘붉은 이데올로기’로 무마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혁명 열기가 대중적지지 속에 확산되는 것은 혁명 초기 내세웠던 ‘평등’이라는 이상에 대한 향수로도 해석된다. 징강산이나 루이진, 홍군이 대장정을 마치고 도착한 산시(陝西) 성의 옌안(延安) 등에는 마오 등 최고 지도부가 불과 6.6∼9.9m²(2∼3평)의 토방이나 굴에서 소박하다 못해 누추하게 생활했던 곳이 보존되어 있다. 베이징 런민대 대학원생이자 공산당원인 장궈항(張國航) 씨는 “이런 곳을 돌아보면 당에 대한 우리의 신앙이 결집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 공산혁명, 과제도 ‘산 넘어 산’

“불균형과 부조화, 지속불가능 문제가 여전히 두드러진다. 소득분배의 격차가 비교적 크다. 산업구조가 불합리하며 농업기초가 여전히 취약하다.”

올해 3월 5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업무보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원 총리가 조목조목 지적했듯이 공산당은 숱한 숙제를 안고 있다. 빈부격차, 도농격차, 지역격차 등 중국의 이른바 3대 격차는 계속 악화돼 왔다. 빈부격차에서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만 봐도 이런 추세는 뚜렷하다.

1979년 지니계수는 0.2 정도였지만 꾸준히 올라 2000년에는 위험 수위인 0.4를 넘어 2010년에는 0.5도 넘겼다. 0∼1로 표시되는 지니계수는 숫자가 커질수록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뜻.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도 심해 해마다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부패 혐의로 10여만 명을 적발해 처벌하고 있다.

군중 시위도 폭증하는 추세다. 중국 정부는 2003년 이후 시위통계를 발표하지 않는다. 다만 한 관영 언론은 2006∼2010년 군중 시위가 2배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공산당이 강제로 병합한 소수민족의 자치 요구 등 저항도 계속되고 있다. 2008년 티베트 자치구의 티베트족 시위, 2009년 신장(新疆)위구르족 자치구의 위구르족 유혈폭동, 최근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의 몽골족 시위 등이 이어지고 있다.

○ 이상과 현실 사이의 고민

1921년 7월 23일 창당 당시 당원은 53명에 1차 당대표 참가자는 13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9년 말 기준 당원은 7799만 명, 대표는 2213명(17대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정당이다. 군벌 국민당 공산당 내분과 일본 등 외세의 침범까지 겹쳐 암울한 ‘아시아의 병자’였던 중국은 이제 세계 강국으로 부상했다.

90주년 창당 기념에 맞춰 항공모함을 처음 진수하고 단일 구간으로는 세계 최장의 베이징∼상하이(上海) 고속철도를 개통한다. 올 하반기 우주에서는 첫 무인우주선 랑데부도 시도한다. 모두 창당 기념 이벤트이다.

하지만 창당 90주년을 기념해 ‘성지 순례’를 온 당원들, 거리에서 붉은 물결을 이루고 있는 시민들이 감히 입 밖에 내지는 않고 있지만 90년 전 내건 이상과 현실 간에 느껴지는 괴리에 대한 씁쓸한 자각도 밑바닥 곳곳에서 느껴지고 있다.

징강산 루이진=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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