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길라니 총리, 軍-치안담당 정보국 이례적 비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美, 통보도 없이 빈라덴 작전할 때 손놓고 뭐했나”
파키스탄 민간정부, 軍길들이기 나서

유수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는 9일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한 의회연설에서 파키스탄군과 정보국(ISI)을 향해 “미군이 사전통보 없이 오사마 빈라덴이 은신해 있는 아보타바드에서 군사작전을 벌였지만 전혀 대응하지 못한 경위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빈라덴이 5년 이상 이슬라마바드에서 1시간도 채 안 되는 군사도시에 은신하고 있었는데도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답변을 요구했다.

평범한 요구 같아 보이지만 1948년 창설돼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해 온 ISI의 위상을 생각하면 의회출석 및 설명 요구는 파격적인 조치다. ISI는 행정 권력의 통제 밖에 있고 외교 및 국내외의 치안 및 안보에 전권을 행사한다.

▶본보 6일자 A21면 참조
A21면 ‘빈라덴 비호’의혹 받는 파키스탄 정보…


파이낸셜타임스는 10일 “파키스탄의 민간 정부가 빈라덴 사살사건을 계기로 군과 정보국을 자신의 통제 안에 넣으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키스탄 내에서는 정보 실패의 무능력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은 물론이고 미국의 군사작전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무기력한 군부에 대한 비난여론이 커지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1970년대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 이래 여러 차례 군 개혁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ISI는 알리 부토 전 총리의 딸이자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현 파키스탄 대통령의 부인인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2007년 대선 유세 도중 알카에다의 자살폭탄테러 공격으로 사망했을 당시 이를 방조 또는 관여했다는 의혹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ISI의 부토 총리 암살 관여가 사실이라면 길라니 총리의 ISI 공격은 대통령 아내의 원한을 대신 갚는 작업의 의미도 지닌다.

미국에 대한 예봉도 늦추지 않았다. 길라니 총리는 “일방적인 군사작전이 일어날 경우 파키스탄은 군사적 대응으로 보복할 권리가 있다”며 “국토를 방어하는 우리 국가와 군의 능력 또한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빈라덴 제거 작전 중 파키스탄과의 무력 충돌 가능성에 대비해 충분한 병력의 파견을 지시했으며 유사시 파키스탄군과의 교전권 역시 승인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빈라덴을 생포하거나 사살할 경우 모두에 대비해 변호사와 심문 전문가, 통역사 등으로 구성된 심문 팀과 장례 팀이 각각 항공모함 칼빈슨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0년 전인 2001년 파키스탄 군부를 이끌다 대통령에 올랐던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과 미국은 ‘빈라덴 등 알카에다 지도부의 소재가 파악될 경우 미국이 파키스탄에서 행하는 독단적인 공습을 허용한다’는 내용의 비밀협정을 맺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