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라덴 사살 이후]“테러용의자 가혹 신문은 정당한가” 美 다시 불붙은 논쟁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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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콘 “빈라덴 같은 자 잡는 합법적인 수사기술”
현정부 “고문으로 얻는 것은 거짓 정보밖에 없어”

오사마 빈라덴의 사살을 계기로 미국 내에서 가혹 신문(訊問) 기법의 효용성과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논쟁의 이면에는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관의 타당성과 통치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보수와 진보진영 간의 해묵은 감정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부시 행정부의 안보정책을 주도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딕 체니 전 부통령은 8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물고문의 일종인 ‘워터보딩(waterboarding)’을 포함해 테러 용의자들에게 사용해 온 강력한 신문 기법이 빈라덴의 행적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사살 작전을 마무리했지만 숨은 일등공신은 바로 가혹신문 기법이라는 주장. 체니 전 부통령은 “워터보딩은 합법적인 신문 기법이지 고문이 아니다”라며 “지금도 이 기법을 옹호하고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워터보딩은 널빤지 형태의 신문대에 테러 용의자를 눕힌 뒤 얼굴에 얇은 천을 씌워 물을 지속적으로 흐르게 하는 신문 방법. 용의자로 하여금 호흡곤란으로 익사할 것 같은 느낌을 줘 공포감을 조성하는 기법. 전기고문이나 구타, 일반적인 물고문 등과 달리 신체에 실제적인 위해는 가하지 않은 채 공포감만 준다는 차원에서 부시 행정부 시절엔 워터보딩이 합법의 영역에 속했다. 알카에다 작전 사령관인 칼리드 셰이크 무함마드와 그의 후임자가 된 아부 파라즈 알리비를 체포한 뒤에도 이 방식의 신문이 사용됐다.

가혹신문 기법의 타당성에 대한 논리적 토대는 부시 행정부 시절 법무부 고문변호사로 일했던 한국계 존 유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제공했다. 아프가니스탄 등 ‘테러와의 전쟁’ 중에 생포된 이른바 적 전투원은 제네바 협약에서 규정한 전쟁포로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관타나모 수용소의 정당성과 가혹신문을 옹호했다.

그러나 미국 사회 대다수의 준엄한 비판을 받고 ‘역사의 수치’로 기록되며 폐지된 가혹신문 기법을 옹호하는 논리가 빈라덴 사살을 계기로 제기되는 데 대해 오바마 행정부 진영은 발끈하고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관타나모 수용소의 폐쇄를 공언하며 워터보딩 등 가혹신문 기법을 금지시킨 바 있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CNN 인터뷰에서 “빈라덴을 잡는 데 고문은 별로 기여한 바가 없다”며 “실제로 과거 고문을 당했던 테러 용의자 무함마드 등이 진술한 빈라덴 연락책은 거짓말이었다”고 반박했다. 빈라덴 사살은 위성정보와 안가(安家)까지 동원한 철저한 정보수집 작전과 수년에 걸친 끈질긴 추적 끝에 올린 개가인데 엉뚱하게 보수진영이 공을 가로채려 한다는 불만도 내재돼 있다.

유력 언론들은 대체로 효율성보다는 절차적 정당성(due process)이 더욱 중요한 가치라는 논조다. 진보적 시각의 뉴욕타임스는 “설사 일부 단서를 고문을 통해 얻었다 해도 법과 도덕적 기준을 위반한 부시 행정부의 결정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전통적이고 합법적인 신문 기법을 통해서는 고문을 통해 얻게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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