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원전 ‘7등급’ “늑장 대응” “너무 올렸다” 논박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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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 등급’ 상향조정에 전문가들 의견 갈려

일본이 12일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등급을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최고치 7등급으로 높인 것을 놓고 전 세계 원전 및 보건전문가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방사성 물질 누출량으로 볼 때 20일 전에 벌써 취했어야 할 ‘늑장 은폐 대응’이란 비판이 있는 반면 1986년의 체르노빌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데도 7등급으로 높여 괜한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반론도 있다.

아사히신문은 13일 “지난달 15∼17일 시점에서 이미 7등급에 해당하는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다는 점을 정부 고관이 시인했다”고 보도했다. 사고현장의 작업원들도 “더 빨리 엄정한 평가를 내렸어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제적으로 ‘8등급’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 데니스 플로리 사무차장은 “체르노빌은 거대한 폭발이 있었고 화재도 며칠간 계속됐다는 점에서 후쿠시마와 비할 바 아니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방사능 방어 및 원자력안전연구소(IRSN)도 후쿠시마는 체르노빌에 견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인체에 미치는 위험 평가는 5등급이었던 때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것은 사고 등급에 대한 계량적 기준이 없다는 점에 기인한다. 등급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단일 기관이 아니라 당사국 정부 또는 원전업체가 매긴다. 몇 명이 사망하면 7등급이라든가, 등급별 방사성 물질량의 명확한 기준치도 없다. ‘방사성 물질 누출량이 수만 TBq(테라베크렐·1TBq은 1조 Bq)에 이르면 7등급으로 본다’는 IAEA의 애매한 규정이 전부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제임스 액턴 연구원은 후쿠시마 사고가 7등급으로 된 것은 누출된 방사성 물질량이 규정에 도달했기 때문이지, 사고의 심각성이 체르노빌에 필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스아톰’의 와레리 멘시코프 평의회 멤버는 “일본의 대응이 너무 늦은 것은 맞지만 사고 수준은 6등급이 적정하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세르게이 키리옌코 사장은 “사고등급을 높인 일본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보험의 불가항력(천재지변) 규정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다소 이상하다”고 말했다.

등급만으로 사고의 심각성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많다. 1986년 소련과 2011년 일본은 사고 대처 능력에 차이가 있고 체르노빌에선 초기에 수십 명이 숨지고 2차 피해로 수천 명이 사망했지만 후쿠시마에선 아직 사망자가 없다. 다만 체르노빌은 열흘 만에 원전이 안정화됐으나 후쿠시마는 한 달 이상 지난 지금도 격납용기 손상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여진으로 인한 위험요인이 상존하며 방사성 물질이 계속 뿜어져 나오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다르다.

한편 후쿠시마에서 200km 떨어진 수도권에 4000만 명이 거주한다는 점에서 오염에 대한 민감도가 크며 일본이 밝힌 누출 방사성 물질량은 대기 중에 방출된 것일 뿐 바다로 흘러간 고농도 오염수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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