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판 ‘이승만 박사’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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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 와타라-리비아 임정 지브릴 총리 등
美유학 후광 업고 곳곳서 변화 주도세력으로 활약

역모 혐의로 감옥살이를 했던 황족(皇族)은 출옥 후 곧바로 유학길에 올랐다. 모국 출신 최초의 ‘미국 박사’가 된 그는 조국이 식민지에서 광복을 맞이하자 귀국해 권력투쟁을 거쳐 초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박사’라는 호칭으로 불린 이승만 대통령 이야기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2011년에도 제3세계 곳곳에서 ‘미국 박사’들이 화려한 스펙의 후광을 업고 변화의 주도세력으로 뛰고 있다.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로 나뉘어 내전 상황을 겪고 있는 코트디부아르의 알라산 와타라 대통령 당선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출신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원 재직 시절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88년 서아프리카 8개 국가 중앙은행 구실을 하는 서아프리카중앙은행(BCEAO) 총재에 오르며 조국으로 돌아왔다. 이어 1990년 국무총리가 되면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리비아 반카다피 세력 지휘부도 미국 유학파 중심이다. 마흐무드 지브릴 임시정부 총리는 피츠버그대 박사 출신이다. 알리 타르후니 재무장관은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번 민주화 시위 직전까지 워싱턴대 교수였다.

칼리파 헤프티르 반카다피군 사령관은 20년 넘게 미국에 망명해 살았다. 그는 1980년대 차드와의 영토분쟁 전쟁에서 패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가까스로 리비아 탈출에 성공한 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정착해 권토중래할 날을 기다렸다.

귀국 후 이승만 대통령은 충칭(重慶)임시정부 출신 인사 등 국내파와 마찰을 빚었다. 이들도 비슷하다. 이집트 민주화의 중심인물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뉴욕대 법학박사)은 개헌 투표에 참여하려다 ‘국내 정세를 모른다’며 돌팔매를 당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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