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지진 후]방사선 오염 대란…불안감 확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7일 14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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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 사태로부터 2주일이 지났지만 '방사능 공포'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福島)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속시원한 해결 가닥을 찾지 못하고 장기화되는 가운데 방사선 오염 범위가 확대되면서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도 일본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도쿄까지… 수돗물까지… 방사선 오염 '확대일로'

방사선 오염의 영향권이 사고 원전에서 240㎞가량 떨어져 있는 도쿄 등 수도권으로, 농작물은 물론 수돗물까지 계속 뻗어나가는 추세다.

가장 기초적인 인프라인 수돗물의 경우 도쿄도와 인근 지바·사이타마·이바라키 현에서 유아의 음용제한 기준치를 초과하는 요오드131이 정수장에서 검출되는 등 방사선 오염 범위가 수도권 전반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농산물도 직격탄을 맞아 후쿠시마·이바라키 현에서 생산된 시금치, 양배추 등 10여 가지 야채와 우유는 물론 도쿄에서조차 채소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

사태가 이쯤 되자 그간 이들 지역의 식품을 섭취해도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혀왔던 일본 정부도 입장을 바꿔 이들 지역에서 생산된 해당 품목들의 출하를 중단시키고 먹지 말 것을 소비자에게 당부했다.

이처럼 식수와 먹을거리의 방사선 오염이 확산되는 정확한 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 원전에서 방사성 물질이 물과 연기 등을 통해 계속 유출되고 있어 방사선 오염이 사고 원전 인근 지역을 넘어 광범위한 대기와 토양, 바다로 퍼지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사고 원전 북서쪽으로 40㎞ 떨어진 후쿠시마 현 이타테 마을의 토양에서 요오드131은 국가가 정한 방사선 관리구역 기준치의 약 40배, 세슘137은 약 4배가 검출됐고, 30㎞ 떨어진 한 지점에서는 하루 방사선 누적량이 약 1.4밀리시버트로 일반인 연간 한도치를 넘는 것으로 측정됐다.

바다도 사고 원전에서 수백m 밖에서 법적 한계치의 1250배, 16㎞ 떨어진 해역에서 16배의 요오드131이 각각 검출되는 등 방사능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수산물의 방사선 오염 가능성도 커졌다.

사고 이후 일본은 원자로 등의 냉각을 위해 막대한 양의 바닷물을 퍼부었는데, 이 해수 중 일부가 바다로 도로 흘러들어갔다고 일본 관리들은 확인한 바 있다.

또 원자로 3호기 터빈실에서 정상적인 원자로 노심의 물보다 농도가 1만 배 높은 고농도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물이 발견됨에 따라, 이같이 고농도 방사선에 오염된 물이 배관 손상 등으로 인해 여기저기로 새어나갔을 수 있다고 NHK 방송은 지적했다.

◇'방사능 엑서더스', '생수 사재기 대란'

이처럼 방사성 물질 오염 범위가 날로 확산되면서 사고 원전을 피해 바깥으로 '대탈출' 대열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정한 피난 지역은 사고 원전 반경 20㎞ 이내지만, 그 외부의 주변 지역에서도 방사선에 대한 공포와 극심한 물자 부족 등으로 많은 주민들이 후쿠시마 현을 떠났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도 25일 옥내 대피 지역인 반경 20~30㎞ 내 주민에 대해서도 사실상 피난을 권고하고 피난 지역을 30㎞로 확대하는 방안 검토에 착수했다.

그러나 피난 주민들이 외지에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현상마저 나타나, 피난을 떠난 원전 인근 주민들이 호텔, 여관에서 숙박이 거부되는 사례가 잇따라 후생노동성이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도쿄와 수도권에서도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해 거리가 한산해진 가운데 간사이(關西) 지방 등으로 떠나는 시민들도 늘고 있으며, 중국·프랑스·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가 자국민의 일본 밖 철수를 돕는 등 외국인들의 일본 탈출 움직임도 뚜렷하다.

또 수돗물과 식품의 방사선 오염 공포가 확산되면서 생수 등 안전한 먹을거리의 '사재기 대란'이 빚어지고 있다.

도쿄도의 요오드131 검출 발표 직후 도쿄 시내 슈퍼마켓 등에서는 생수를 사려는 소비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6세 이하 세 자녀를 둔 한 가정주부(35)는 "TV에서 뉴스를 보자마자 집을 뛰쳐나와 인근 슈퍼마켓으로 자전거를 타고 비를 맞으며 달려가 2¤들이 페트 6개와 500㎖ 페트를 바구니에 집어넣었다"며 "아이들 우유는 물론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데도 수돗물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 당국은 성인의 경우 문제의 수돗물을 마셔도 건강에 별 영향이 없고 방사성 물질이 발견된 농산물들도 대부분 '인체에 유해한 수준은 아니다'라며 안심시키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수돗물 등의 방사선 오염 정도가 얼마나 더 심해질지, 수많은 다른 농축산물과 수산물 중 오염된 품목이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르는 소비자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도쿄 세타가야(世田谷)구에 사는 주부 우치다 유키(內田有紀) 씨는 "정부에선 인체에 해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애한테 먹일 걸 생각하면 도저히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며 "후쿠시마 인근에서 생산된 농작물은 당분간 사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후폭풍 세계로… 일본발 식품·선박 경계령

방사선 공포가 일본 밖으로도 퍼지면서 당장 일본산 식품에 대한 경계경보가 울렸다.

한국,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러시아, 호주, 대만 등 세계 각국이 연이어 후쿠시마와 인근 4~5개 현에서 생산된 전체 또는 일부 식품의 수입을 중단하거나 수입 통제를 강화하고 나섰다.

특히 일본과 가까운 아시아에서는 일본산 식품을 취급하는 음식점에 손님 발길이 끊겨 홍콩 내 600여개 일식당의 매출이 급감했고 상당수 특급 호텔들과 고급 식당들이 회, 초밥 등의 판매를 중단했다.

선박과 항공기의 화물과 승객 등을 통한 방사성 물질의 확산 우려도 적지 않아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일본에서 출발했거나 사고 원전 앞바다를 거쳐 도착한 선박에서 정상치를 초과하는 방사선이 검출돼 격리 조치되는 사례들이 잇따랐다.

그 결과 몇몇 독일 해운사가 방사선 오염을 우려, 도쿄를 포함한 일부 항구에 입항하지 않기로 했으며, 대만은 일본의 사고 원전 인근 13개 항구에서 출항하는 모든 화물에 대해 방사성 물질 오염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대기를 통한 방사능 위험에 대한 우려도 퍼지고 있는데, 세계 대기의 방사성물질을 측정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에 따르면 사고 원전에서 배출된 방사성 물질이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22일 아이슬란드에서 관측돼 앞으로 2~3주 후면 세계를 일주할 것으로 예측됐다.

또 CTBTO 관측 데이터를 근거로 오스트리아의 기상학·지구역학 중앙연구소가 이번에 배출된 요오드131과 세슘137의 양을 추산한 결과 1986년 체르노빌 사고 당시 배출량의 각각 약 73%, 약 6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과학 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가 전했다.

다만 배출된 방사성 물질의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방사선 수치가 낮고 반감기가 짧은 요오드131과 세슘137이고, CTBTO에 따르면 세계를 일주할 방사성 물질의 양이 극소량이어서 인체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처럼 대기를 통한 방사선 피해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미국에서는 방사선 피폭에 따른 갑상선암 발병 가능성을 줄이는 요오드화칼륨 약품과 방사선 측정기인 가이거 계수기가 불티나게 팔려 재고가 바닥나면서 과잉 반응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바닷물의 방사성 물질로 인해 향후 생산될 소금이 오염될 가능성이 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면서 한때 소금 사재기 소동이 빚어져 중국 당국이 유언비어 유포자를 검거하고 강력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패닉'은 경계해야

이처럼 일부에서 보이는 '패닉' 양상은 사람들이 과도하게 공포감을 갖게 하는 방사선 특유의 독특한 요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영국 카디프대학 닉 피전 교수는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 않고 모르는 사이에 퍼지며, 후유증이 수십년 간 지속되고 후유증 여부를 확실히 가려내기 어렵다며 "이런 것들이 하나로 결합하면 각종 공포 요인들의 거의 '퍼펙트 스톰'이 된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 특히 일본 밖 외국의 공포는 실제 위험보다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대학 방사선학 전문가인 제럴드 부시버그 교수는 "사람들은 대체로 방사능에 대해 과장된 공포를 갖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도 그렇고 일본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리처드 웨이크필드 교수도 "현재 일반인의 노출 수준은 염려할 것이 못 된다. 많은 일본인들이 암 검진을 위해 받는 CT촬영의 경우 약 1mSv의 방사능에 노출되는데 이것은 현재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인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사람들이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물을 계속 마시고 오염된 땅에서 자란 채소 등을 계속 먹은 결과 많은 후유증을 겪은 체르노빌의 사례 등을 고려해 사고 원전 인근의 토양과 물, 식품 등의 오염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덧붙였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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