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이주노동자들 용병 오해받아 피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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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조국도 외면… “정권 몰락후 대량학살 우려”

돈을 벌기 위해 가난한 조국을 등지고 리비아 공사장에서 일해온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리비아 내의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뜻하지 않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선진국들은 자국 교민을 위해 수송기와 선박, 심지어 군용기까지 보내지만 이들 아프리카 노동자들의 조국은 그럴 힘이 없다. 할 수 없이 발이 묶여 있다 보니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고용한 흑인 용병으로 오인 받아 봉변을 치르기 일쑤다.

아랍 위성TV 알자지라는 1일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리비아로 들어와 석유회사와 공사장 등에서 일하는 아프리카 노동자들의 고충을 보도했다. 알자지라는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미 리비아 내 아프리카 노동자 수십 명이 살해당했다고 전했다. 한 60대 아프리카 노동자는 “반정부 시위대는 흑인이 눈에 띄면 무조건 용병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단체는 현재 이주 아프리카 노동자 수천 명이 숙소에 고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용병으로 오인받은 아프리카 노동자들은 시위대의 공격을 받아 크게 다쳐도 거리에 나섰다가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치료를 받으러 가지도 못하고 있다.

국제이주기구의 하인 데 아스 선임연구원은 “아프리카 노동자들은 (일을 하면서) 무자비한 착취에 시달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최근에는 이들의 딱한 사정을 보다 못한 주리비아 케냐대사관이 자국민 90여 명을 데려오면서 다른 아프리카 11개국 국민 64명을 케냐 수도 나이로비로 대피시키기도 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카다피 원수가 물러난 후에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북아프리카연구소의 사드 자바르 부소장은 “리비아 전 국토를 뒤흔들고 있는 폭력의 기운이 카다피 정권 몰락 후에도 아랍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흑인에 대한 대량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들의 모국 정부가 아무 지원도 하지 못한다면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리비아로 들어온 노동자는 150만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거의 대부분 매우 싼 임금을 받고 건설 현장, 농장, 서비스업 등 인력 수요가 많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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