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거리에서 만난 ‘젊은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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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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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층이 좋은 일자리 독식… 젊은이라면 모두 시위 지지”

이종훈 특파원
이종훈 특파원
그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부패한 종교와 권력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들은 또 무슬림이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중동 민주화혁명의 주역인 젊은층,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는 3주 넘게 이집트 카이로와 이란 테헤란의 격동의 현장을 누비는 내내 기자의 머릿속을 차지한 화두였다.

18일 이란 젊은이가 많이 모이는 테헤란 시내 간디거리의 한 커피숍. 차를 마시던 건축가 알리 씨(26)와 여자친구에게 “요즘 반정부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알리 씨가 “우리도 시위에 갔었다. 청년실업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멀쩡하게 대학 나와서 놀고 있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 시위에 나가지 않는 젊은이들도 속으론 모두 지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자친구는 “도대체 이 정부의 고위층 인사나 자녀들이 법을 제대로 지키는 게 있느냐.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특권층이다”라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란의 대졸 신입사원 월급은 약 300∼400달러. 1인당 월 최저임금은 공식적으로는 273달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친다. 그나마 직장을 잡은 사람은 행운아에 속한다. 이란 정부는 지난해 실업률이 14.1%라고 밝혔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테헤란대 근처 식당에서 만난 한 대학생(21)은 “테헤란의 서민들은 권력자의 자제나 친인척들이 아무 노력도 없이 정부 관공서나 대우가 좋은 외국계 기업에 쉽게 취직하는 걸 보고 좌절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정부의 각종 보조금 축소, 물가 급등, 오랫동안 계속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이들의 좌절을 더 심화시키고 있었다. 이란 정부는 그동안 민심 관리 차원에서 엄청난 국가보조금을 써가며 각종 에너지 가격을 원가의 3분의 1에서 4분의 1 정도로 낮게 유지했다. 그러다 지난해 재정 개선과 과소비 근절 차원에서 대폭 올려 기름값은 L당 100원에서 400원으로, 가스 값은 4배가량 올랐다. 다음 달부터는 전화, 전기요금도 오른다. 조만간 결혼할 예정인 마리암 씨(여)는 “테헤란 북쪽의 부촌인 저메장 지역에서 살고 싶어 신혼 살림집을 알아보다가 포기했다. 방 2개짜리는 평균 월세가 1500∼2000달러, 3개까지는 2500달러나 됐기 때문이다. 남편 월급으론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이란 정부가 밝힌 지난해 평균 물가상승률은 15.5%. 그러나 테헤란에서 20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 한국 교민은 “피부로 느끼는 체감 물가 상승률은 훨씬 높다. 정부 보조금은 줄고 물가는 폭등하니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엄격한 이슬람 문화가 지배하다 보니 청년층은 사회 불만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통로가 없다. 앞에 소개한 건축가 알리 씨는 “놀고 싶어도 놀 게 없다. 연인 손이라도 잡으려면 으슥한 공원에서 남들 눈을 피해 데이트해야 한다. 가까운 친구들끼리 놀고 싶으면 번갈아 가며 집으로 불러야 한다”고 했다. 술만 해도 공식적으로는 판매가 금지돼 있다. 음성적으로 돌아다니는 술도 전량 밀수된 것들. 이마저도 당국의 단속에 따라 가격이 수시로 급등한다.

어려서부터 위성방송을 통해 서구 문화를 접한 이란의 신세대는 성직자와 정치인들이 대중에게는 무슬림적인 엄격한 삶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부패할 대로 부패한 이중적인 행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32년 전 이슬람 혁명을 통해 부패한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면서 독재와 빈부격차를 없애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루홀라 호메이니의 후예들이 이제 이란의 젊은층에는 없어져야 할 지탄의 대상이 돼 있었다.

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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