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영웅이 쏟아낸 눈물… 이집트 시위 다시 불붙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 구글 임원 고님 방송인터뷰 다음날 25만 최대인파 운집

“이집트인은 더 나은 삶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영웅은 내가 아니라 이 광장을 지킨 바로 여러분입니다.”

8일 오후 이집트 민주화시위의 메카가 된 카이로 도심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모인 군중의 시선은 한 남자에게 집중됐다. 연단 위에 올라선 와엘 고님 구글 중동·아프리카지역 마케팅담당 이사(31)는 “우리는 결코 우리 요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퇴진”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군중은 “이집트 만세” “무바라크 퇴진”을 외치며 환호했다.

영국 BBC방송은 지난달 25일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최대 규모인 수십만 명(25만 명 추산)이 이날 타흐리르 광장에 모였다고 보도했다.

▶ 본보 9일자 A18면 민주화 상징된 구글 중동 이사

‘고님의 눈물’이 숨고르기에 접어들었던 이집트 반정부 시위의 불꽃을 되살리고 있다. 고님 이사를 ‘이집트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떠오르게 한 것은 7일 밤 전국에 방영된 현지 위성방송 ‘드림TV’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보여준 눈물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을 이용해 반정부 시위의 불을 지핀 그는 지난달 27일 사복 경찰에 납치됐다 11일 만인 이달 7일 석방됐다.

인터뷰에서 차분하게 시위의 정당성을 설명하던 그는 인터뷰 진행자가 시위 도중 숨진 젊은이들의 사진을 보여주자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이는 (30년간 독재 통치를 용인한)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가야겠다”고 말한 뒤 인터뷰를 중단하고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이 장면은 지켜보던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시위대원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나는 와엘(고님의 이름)을 이집트 혁명가들의 대변인으로 위임합니다’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방송이 나간 뒤 20시간 만에 무려 13만 명이 친구를 신청했다. 인터뷰 진행자도 고님을 따라 8일 시위에 동참했다. 그동안 시위를 방관했던 사람들도 공분(公憤)을 느끼며 자발적으로 광장을 찾았다. 대학교수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가세했다.

주춤했던 이집트 반정부 시위 열기가 다시 달아오르자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대화를 거부하면 쿠데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시위대를 향해 경고했다. 그는 이날 현지 언론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시위를 장기간 인내할 수는 없다. 가능한 한 빨리 위기를 끝내야 한다”며 “정부는 대화로 현 위기에 대응하려 한다. (대화를 거부하면) 두 번째 대안은 쿠데타”라고 말했다. 쿠데타 발언이 논란이 되자 그는 “군부 쿠데타를 의미한 게 아니라 통치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세력이 국가기구를 전복하는 것을 말한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또 이날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의 통화에서 30년간 유지해 온 긴급조치법을 즉각 폐지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긴급조치법은 폐지할 상황이 돼야 없앨 수 있다”고 반박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이날 긴급조치법 폐지 외에도 △보다 광범위한 야당 인사들과의 대화 △집회 및 표현의 자유 허용 △전환 로드맵 작성에 야당 인사 참여 등을 요구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