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하던 이집트 시위대 다시 국회앞 진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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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반정부 시위 사태가 보름째로 접어들면서 힘의 균형추가 시위대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정부 쪽으로 다소 기우는 양상이다. 벼랑 끝에 선 무바라크 대통령은 ‘개혁’을 표방한 선심 조치로 성난 민심을 달래며 야권의 분열을 기도하고 나섰다. 야권은 즉각적 정권 퇴진과 점진적 민주화 사이에서 엇갈리는 양상이며 시위대는 동력이 소진된 듯 지난 며칠 간 다소 소강상태를 보였다. 하지만 시위가 3주 째 접어든 8일에도 수만 명의 시위대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드는 등 아직 사태의 결말을 단정 짓기는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 선물 보따리 들고 다시 나선 무바라크

이집트 정부는 6일에 이어 7일에도 개혁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 뒤에서 저자세를 유지하는 듯하던 무바라크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7일 새 내각과 첫 국무회의를 갖고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2일 벌어진 친무바라크 시위대에 의한 폭력사태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수사하겠다며 독립적 조사위원회 구성을 선언했다. 또 4월부터 공무원 월급을 15% 인상하고 연금 재정을 65억 이집트파운드(약 1조2000억 원)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카이로 시내 은행과 상점이 문을 열고 차량 통행도 정상화되어가는 가운데 나온 정부의 ‘개혁 공세’를 두고 시위대는 “과거에도 써먹었던 분할통치(divide and rule) 정책”이라고 일축했다. AFP통신도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시간 벌기’를 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야권에는 일단 먹히는 분위기다. 이집트 정·재계 및 시위대 유력 인사로 구성된 야권의 ‘현명한 25인 위원회’ 안에서도 서로 의견이 갈리기 때문. 위원들 사이에서는 “정권 이양 기구가 제대로 작동할 때까지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 야권 균열, 그러나 다시 불 지필 가능성도
야권의 균열 조짐은 반정부 시위대의 성지로 불리는 타흐리르 광장에서도 지난 며칠 간 엿보였다. “선(先)무바라크 퇴진”을 고수하는 열혈 시위대가 보름째 버티고 있는 이곳은 시민들 사이에 활발한 정치 토론이 이뤄지는 축제와 해방의 장이다. 시위대가 다양한 즉석 공연을 벌이는가 하면, 수백 명이 박수를 치며 반무바라크 구호를 연호하고 구호 장단에 맞춰 벨리댄스를 추기도 한다. 7일엔 광장 결혼식도 열렸다.

하지만 광장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참가자의 피로도가 깊어지고 루머까지 횡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KFC 음모론’이다. 즉 반정부 시위대가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인 KFC가 제공하는 닭요리를 먹고 있다는 소문이다. 반정부 시위대가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암시다. 미 월간 애틀랜틱 인터넷판은 7일 “음모론이 힘을 얻자 시위대 사이에서는 ‘반무바라크’ 이외 의견들은 금기시하는 신경과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사복경찰이나 정보요원의 침투에 대한 경계심도 날카롭다. ‘코샤리(쌀 파스타 토마토소스로 만든 이집트 전통 주식) 경보론’도 한 예다. 광장을 에워싼 이집트 군이 음식을 파는 상인들의 출입을 금했는데 최근 코샤리를 파는 사람들이 보인다는 것. 정부 첩보원인 이들은 허기진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면 ‘반정부 시위는 성공할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해대 시위대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다고 한다.

시위 장기화에 대한 중산층의 우려도 나오고 있다. 휴업 중인 향수가게 주인 이브라힘 파예드 씨(42)는 “처음에는 시위를 지지했지만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본다”며 “시위대가 국민 8400만 명을 인질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대의 동력이 소진되리라는 것은 일부에서 초기부터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시위를 끌고 나갈 대중운동 조직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3주째로 접어드는 시위가 단번에 수그러들 것이라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8일에도 반정부 시위를 주동해 당국에 구금된 뒤 풀려난 와엘 고님 구글 중동·아프리카지역 이사가 수만 명이 모인 타흐리르 광장에 나타나 연설을 한 것을 계기로 시위대의 사기가 한껏 높아졌다. 시위대 일부는 이날 오후 광장을 빠져나와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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