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시위 유혈충돌]軍의 선택은 대통령 4명 배출하고 국민지지도 높아… 아직은 ‘중립’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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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 저울질, 이란처럼 통제력 잃을까 우려… 개혁 요구속 손익 계산

반정부 시위와 관련해 이집트 군부의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1952년 왕정을 뒤엎는 쿠데타 이후 모두 4명의 대통령을 군 장성 출신에서 배출했다. 1975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으로 발탁된 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역시 공군 장성 출신이다.

군은 대규모 시위 발생 초기부터 현장에 배치됐지만 아직 무력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이집트 군은 미국과 ‘특수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8년 미국은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휴전한 이래 이집트에 350억 달러에 이르는 군사원조를 제공해 오는 등 긴밀한 우호협력을 유지해 오고 있다. 미국은 이집트 군부가 시위대 유혈진압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군부가 여전히 무바라크 대통령의 통제하에 있다는 점에서 시위대와의 충돌 가능성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제시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 카드를 통한 ‘수렴청정’에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 행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심복에게 자리를 내주겠다는 무바라크의 생각은 오바마 대통령이 요구하는 ‘확고한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확실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오바마 행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미국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친미 독재국가에서의 민주화 시위와 관련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1979년 당시 왕정을 종식시키고 이슬람 공화국을 연 이란의 사례는 뼈저린 경험이다. 지미 카터 당시 행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폭정을 일삼은 팔라비 왕정을 포기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손을 들어줬지만 결과적으로 이란을 영원히 미국의 통제에서 잃는 계기가 됐다. 1986년 필리핀 모델은 다른 결과를 낳았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피플파워’ 혁명 지원은 결국 마르코스 퇴진으로 이어졌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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