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GS연쇄 부도 위기]노조에 밀려 개혁 좌초…빚더미속에서도 선심정책 펴 몰락 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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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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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지하자금 양성화 외면
2007년 못거둔 세금만 45조원
곳간 비어가는데 대규모 공사
금 융쓰나미 닥치자 폐허로


《남유럽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의 재정위기는 방만한 재정 운영과 공공부문 개혁의 실패, 노조의 저항,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이들 국가의 정부는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환부(患部)를 도려내 경제체질을 바꾸는 노력 대신 당장 국민에게 달콤한 ‘선물’을 주는 데 치중했다. 저성장으로 나라 곳간이 비어가는 상황에서 대규모 공사를 벌이며 지출을 늘리다 보니 해외에서 빌린 빚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덩달아 나랏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여기에는 정부 정책의 발목을 잡는 강성 노조와 온정적인 정책을 펴온 중도좌파 정부, 막대한 세금이 새나가는 지하경제 등이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다. 세계경제가 호황일 때는 문제가 있어도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줄이 막히면서 이들 국가의 국가부채는 세계경제의 불안요소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 비효율에 익숙해진 사회

지난해 말 기준 PIGS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그리스가 13.6%로 가장 높고 스페인(11.2%), 포르투갈(9.4%), 이탈리아(5.3%) 순이다.

PIGS 국가의 재정적자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2년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재정적자 비율은 이미 10%를 넘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보다 나은 수준이었지만 이후 계속 증가세를 보여 1993년에는 7%대였다.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에는 오히려 적자폭이 줄었지만 이후 다시 급속도로 늘어 지금에 이르렀다.

공공부문 개혁에 실패한 것이 부실의 근본 원인이다. 2009년 10월 집권한 그리스 사회당 정부는 공기업 근로자에게 임금을 올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정부 지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공기업 인건비 때문에 재정적자가 크게 증가했다. 재정이 파탄 날 지경이지만 공기업 노조는 정부의 추가 혜택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강성 노조의 저항에 부닥쳐 공기업 개혁이 부진하다. 공교롭게도 유럽연합(EU) 내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좌파가 여전히 집권 중인 4개국 가운데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가 있다.

지하경제 규모가 너무 커 재정적자가 심해졌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지하자금을 양지로 끌어내는 조치는 진척을 보지 못했다. 그리스 감사원은 2007년에 거둬들이지 못한 세금이 310억 유로(약 45조88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는 관광과 해운업의 비중이 너무 높아 글로벌 경기가 불황에 접어들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가 많았지만 제조업 비중을 높이는 산업 구조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 금융위기가 PIGS의 몰락 촉발

PIGS 국가에도 경제체질을 바꿀 기회는 있었다. 1999년 EU 단일통화인 유로화가 도입되기 전 자체적으로 환율정책을 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산업 구조조정과 함께 자국 경제력에 맞는 통화가치를 유지했다면 경상수지를 개선하면서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투기세력에 외환시장의 주도권을 내주는 바람에 경상수지를 흑자로 돌리는 데 실패했다.

유로화 도입 후 EU 지역 내에서 단일 통화정책이 시행되면서 수출을 통해 재정적자 문제를 풀 수 있는 여지는 크게 줄었다. 산업경쟁력이 떨어지는데도 독일 프랑스 등 강대국 수준으로 통화가치를 높이다 보니 경상수지 적자폭이 더욱 커졌다. 실제 스페인의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비율은 유로화 도입 전인 1994∼98년에는 평균 0.7% 수준이었지만 1999∼2007년에는 5.5%로 급증했다. 잘사는 나라나 못사는 나라 모두 획일적인 환율을 적용한 결과다.

자국 내 경제체질 개선에 실패하고 준비 없이 유로화 단일 통화체제에 가입한 상황에서 2008년 불어닥친 금융위기는 악몽일 수밖에 없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금융회사를 지탱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구제금융을 넣는 것밖에 없었다. 스페인은 저축은행 부실을 막기 위해 재정부담이 커졌고 정부 보증비율이 GDP의 15% 선을 넘어섰다.

이런 와중에도 그리스 공공노조연맹은 파업을 벌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로존 국가들이 구제금융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도 결단을 주저하는 것은 PIGS 국가가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설 의지가 있는지 미심쩍기 때문이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도움말 주신 분들 (가나다순)

김용진 주영국대사관 재경관,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이종건 KOTRA 밀라노 KBC센터장, 임일섭 농협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조태열 주스페인 대사

■‘디폴트 위기’ 그리스, 살아날 가능성은?
주변국 도움에 올해는 버틸듯… 내년이후는 안갯속


그리스발 유럽 경제위기를 막아낼 수 있을까.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이 그리스 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데도 상황은 악화일로다.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처한 그리스의 회생 여부는 유럽 경제위기 사태를 풀어나갈 핵심 열쇠. 29일 외신들은 향후 전망에 대한 분석을 쏟아냈다.

○ 독일 지원으로 최악의 상황은 피할 듯

구제금융에 부정적이던 독일이 입장 변화 방침을 시사하면서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8일 “그리스와 EU, IMF 협상이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독일도 그리스 구제를 위해 해야 할 몫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메르켈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IMF는 지원 금액을 기존 150억 유로에서 250억 유로까지 늘릴 방침이다.

주변국들에 그리스 지원을 압박하는 분위기도 강해졌다. 유럽의 주요 선진국 은행들이 그리스에 대출해주거나 투자해놓은 금액도 상당하다. 프랑스는 788억 달러, 독일은 450억 달러가 물려 있다. EU는 5월 10일 그리스 지원 논의를 위한 긴급 EU 정상회의를 열기로 했다.

○ “디폴트 시나리오도 준비해야”

하지만 장기적인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시장에는 그리스가 올해를 버티더라도 내년 이후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치솟은 채권금리는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 신호다. 그리스의 실업률은 1월에 11.3%로 6년래 최고치를 넘어선 상태. 이미 경제성장 동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강력한 긴축정책이 시행돼 경기침체가 가속화될 개연성이 높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한 대형 투자은행이 고객들과 가진 회의에서 전체의 80%가 “그리스는 디폴트 사태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디폴트 사태를 막는 방법으로 채무 재조정 시나리오가 있다. 채권국과 기관들이 그리스가 갚아야 할 금액과 시기를 조정하는 것. 삭감 규모는 20∼50%가 될 것이라고 BBC방송은 전망했다. 이는 향후 그리스 국채 가격의 추가하락 및 유로화 가치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리스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해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제회복을 꾀하는 것도 한 방법.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해 옛 자국통화인 드라크마로 돌아간 뒤 최대 4분의 1 수준까지 통화가치를 떨어뜨려야 한다. 이 경우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다 금융시스템의 혼란도 불가피하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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