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오바마의 中 일정은 하이재킹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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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0일 03시 00분


W P “어떤 큰 현안 돌파책도 없이 귀국길로”
“통화-통상-안보 정책 난제 부닥친 험난한 여정”
“가족사 얘기 풀어놓는 ‘전기 외교’ 한계 보여”
美 언론, 亞순방 평가 냉담


‘오바마의 태평양 여행, 높은 파고를 만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8일간의 아시아 순방 기간에 스스로를 ‘미국의 첫 번째 태평양 대통령(first Pacific president)’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차이가 컸다. ‘빅2’로 떠오른 중국의 힘을 여실히 체감해야 했고 일본에서도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와 껄끄러운 관계를 정리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9일자 서울발 기사에서 “오바마의 아시아 여행은 여러 면에서 길고도 가파른 고갯길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미국의 첫 번째 흑인 대통령의 방문이라는 색다름은 통화정책(중국), 통상정책(싱가포르 중국 한국), 안보정책(일본), 대륙을 타고 앉은 800파운드 고릴라(중국)라는 난제를 헤쳐 나가야 하는 현실에 밀려났다”고 보도했다. NYT는 특히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가운데 중국 방문을 “가장 험난한 여정”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방문은 가장 많은 공을 들였지만 핵심 현안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을 듣는다. 후진타오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란 핵문제와 위안화 평가절상 등 굵직한 현안에서 중국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 실패했다. 이란과의 핵 협상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이란 제재에 대한 국제적인 공조가 절실한데도 후 주석은 이 문제에 의사 표명을 하지 않았다. 위안화 평가절상 문제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중국 외교가에선 양국이 공통 관심사를 놓고 견해차가 뚜렷한 문제는 뒤로 미루는 ‘구동존이(求同存異·같은 것은 추구하고 이견은 남겨둔다)’ 전략을 썼다고 평가했다. NYT는 “중국에서 일반인들과의 공개 면담도 갖지 못하고 대학생들과의 타운홀 미팅마저 공산당원들로 채워졌다”며 “오바마 대통령의 일정은 하이재킹(공중납치) 당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일본 사람들은 오바마 대통령을 보기 위해 빗속에서도 모여들어 “오바마상!”이라고 외치며 환영했다. 하지만 거리에서의 인기가 반드시 정책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키히토 일왕을 면담하면서 90도로 허리를 굽히면서까지 인사함으로써 일본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노력했다. ‘대등한’ 미일 동맹관계를 주장하는 하토야마 민주당 정부와 소통하겠다는 생각의 표현이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현안인 오키나와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실무그룹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논의한다고 했지만 미일 정상회담 직후 미국은 “2006년 미일합의 이행을 위한 논의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에 일본은 “기존 합의를 백지화하는 것까지 포함해야 한다”며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마지막 순방국인 한국에서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북핵 해법인 ‘그랜드바겐(일괄타결)’에 대해 한목소리를 냈다. 북한에 대해서는 비핵화 결단을 거듭 촉구하면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북 날짜를 12월 8일로 발표하는 등 한미 공조를 재확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FTA 비준을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했다’며 ‘이는 미 의회의 주장과 상충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의 이야기가 아시아를 적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오바마가 어떤 큰 현안의 돌파책도, 아시아 지역 지도자들과 개인적인 유대를 더욱 강화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이 귀국길에 오른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동과 아프리카 방문 때처럼 아시아 순방에서도 가족사 얘기를 풀어놓아 일반인들에게 인기를 누린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전기 외교(biography-as-diplomacy)가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 게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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