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 10%’… 미국은 지금 ‘구직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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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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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도 인력시장 서고… 구직센터엔 실직자 장사진

《미국 경제가 살아난다는 전망들이 나오곤 있지만 실업률은 10%를 넘어섰다. 더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로서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실업률이 줄어들지 않아 고민이다. 26년 만에 최고를 기록한 실업률은 고용시장의 모습도 바꿔놓았다. 그 현장을 둘러보았다.》
“한국 가서 영어 강사하자”… 명문대 출신 비자신청 러시
‘아메리칸 드림’마저 꺼져가… 외국인 취업 비자 첫 미달


○ 대낮에도 서는 인력시장


10일 오전 미국 버지니아 주 애넌데일 시의 거리에 일감을 기다리는 히스패닉계 일용직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이런 모습은 도로변을 따라 500m가량 계속 이어졌다. 애넌데일=최영해 특파원
10일 오전 미국 버지니아 주 애넌데일 시의 거리에 일감을 기다리는 히스패닉계 일용직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이런 모습은 도로변을 따라 500m가량 계속 이어졌다. 애넌데일=최영해 특파원
10일(현지 시간) 오전 11시 미국 버지니아 주 애넌데일 시의 한 편의점 앞에 픽업트럭 한 대가 들어섰다. 주변에 있던 50여 명의 히스패닉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차에서 내린 30대 백인은 이들을 한참 둘러보더니 건장한 체격의 구직자 3명을 골라 픽업트럭에 태웠다. 픽업트럭이 사라지자 모여 있던 히스패닉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이런 장면은 이곳에서 시작해 500m가량 떨어진 한국 식품가게인 ‘무지개식품’까지 죽 이어진다. ‘대낮 인력시장’의 모습이다.

아침마다 이곳을 지키는 남미 출신의 히스패닉은 줄잡아 500여 명. 이삿짐 나르기와 페인트칠, 조경, 건물 철거 등 온갖 잡일은 다 하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하루에 일당을 벌 수 있는 사람은 10%에도 채 못 미치는 50명 정도다. 나머지는 오후 5시까지 이곳에서 죽치며 일자리를 기다린다. 차를 몰고 온 기자가 이곳에서 내리자 “나를 뽑아 달라”며 호소하는 사람이 10명이 넘었다. 페루 출신의 호세 로드리구스 씨(51)는 이달 들어 딱 이틀 일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일자리가 없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1989년에 미국에 건너온 그는 1년 전까지만 해도 하도급 업자였다. 사람을 부리면서 카펫 청소와 페인트 칠, 목재 조립, 리모델링 일을 책임졌지만 금융위기가 닥친 지난해 여름 고객이 급감해 일을 그만뒀다. 그가 지금 1시간에 10달러를 받는 막일을 찾고 있다. 미국의 경기 불황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 남미 출신의 노동자들에게서 희망을 앗아가고 있다.

○ 미 명문대생 한국 영어강사 진출 러시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비자 발급 업무를 총괄하는 L 영사는 올여름 명문대 출신의 고학력자들이 잇달아 한국 비자를 신청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하버드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한 졸업생(22·여)과 조지타운대 영문과 졸업생이 첫 직장으로 각각 한국 학원의 영어강사와 학교의 영어교사를 선택했다. 영어교사를 하면 한국 정부에서 왕복 항공료와 함께 월 220만 원을 받는다. 지난해만 해도 영어교사를 하기 위해 한국행을 택한 사람은 이름이 낯선 단과대(college) 출신이 주류였다. 하지만 올여름부터는 평점이 3.5 이상인 명문대 졸업자가 많았다. 비자 심사에서 영사가 첫 직장으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대답한 사람이 많았지만 “미국에서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라고 솔직하게 말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버지니아 주와 메릴랜드 주를 관할하는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7월부터 10월까지 영어교사 취업을 위해 한국 비자를 발급받은 대학 졸업생은 하버드대와 조지타운대 각 1명, 펜실베이니아대 2명, 존스홉킨스대 3명, 메릴랜드대 5명, 버지니아대 8명 등 모두 120명이다.

○ 직업상담소에 몰려드는 구직자들

10일 오후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 시 ‘버지니아 고용위원회’. 버지니아 주 최대의 인구밀집 지역인 페어팩스 카운티의 고용 문제를 맡고 있는 이곳은 실직자들로 넘쳐났다. 통신업계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제임스 오닐 씨(42)는 “예전에 받던 연봉의 3분의 2만 받아도 취업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실업수당을 청구하러 온 미겔 산토스 씨(45)는 “주당 300달러의 실업수당으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건강보험 혜택도 못 받아 아플 자유도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고용위원회 관계자는 “매주 400명이 넘는 실직자들이 이곳을 찾는다”며 “일자리가 나면 자신의 경력과 상관없이 일단 잡으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시 도니시아 브라운 홍보국장은 “워싱턴 시에서는 3만여 명의 실직자가 일자리를 찾고 있다”며 “특히 보건의료 분야와 교육, 건설 부문에서 고용 변동이 심한 편”이라고 말했다.

○ 아이들 등하굣길에 보이는 아빠들

9일 오후 뉴저지 주 버건 카운티에 있는 노우드 초등학교 앞에선 수업을 마친 자녀를 데려가기 위해 차에서 기다리는 아빠들의 모습이 부쩍 눈에 띄었다. 백인 중산층이 모여 사는 이 학교 학부모들은 대부분 아빠는 직장에 다니고 엄마가 자녀를 돌보지만, 최근엔 직장을 잃은 아빠들이 자녀의 등하교를 책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이크라는 2학년 어린이의 아빠는 “휴대전화 부품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3개월 전 직장을 잃은 후 직접 딸을 등하교시켜 왔다”며 “처음에는 쑥스러웠지만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어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 남아도는 미 취업비자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꺼리면서 외국인 기술 인력의 미국 내 취업 관문이던 취업비자(H-1B)도 남아돈다. 매년 쿼터(할당량)를 두는 H-1B 비자는 지난해만 해도 하루 만에 신청이 마감됐지만 올해는 신청 건수가 9월 말 현재 4만6700건으로 할당량(6만5000건)에 못 미쳤다. 미국 기업에 숙련된 외국 인력을 공급해 오던 취업비자 프로그램이 2003년 시행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알렉산드리아=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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