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식민지들 ‘유물 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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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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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등 英-佛에 반환 요구… “문화교류 끊겠다” 강공
이집트는 루브르 박물관서
파라오시대 유물 돌려받기로

그리스가 반환을 요구한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엘긴 마블’ 중 벽면 부조①. 이집트가 돌려달라고 요구한 네페르티티 흉상 ②과 로제타석③. 나이지리아가 반환을 요구한 16세기 베닌 왕국의 청동상 이디아 여왕 두상④.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그리스가 반환을 요구한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엘긴 마블’ 중 벽면 부조①. 이집트가 돌려달라고 요구한 네페르티티 흉상 ②과 로제타석③. 나이지리아가 반환을 요구한 16세기 베닌 왕국의 청동상 이디아 여왕 두상④.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루브르 대첩(Louvre Victory)!’

이집트가 이달 초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으로부터 3200년 전 파라오시대 무덤의 프레스코 벽화 조각 5점을 돌려받기로 한 사건을 두고 이집트 언론이 표현한 말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유럽 제국주의 기간에, 혹은 식민지들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식민지의 많은 유물이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등으로 약탈되거나 밀반출됐다. 과거 식민지 국가와 구(舊)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뺏고 빼앗긴) 유물 소유권 전쟁’은 주로 배후에서 외교적으로 치러졌지만 특기할 만한 유물 반환은 이뤄진 적이 없었다.

이 와중에 이번 ‘루브르 대첩’이 벌어진 것이다. 승리를 이끈 주인공은 이집트 고(古)유물 최고위원회 자히 하와스 위원장이다. 그는 루브르박물관 측에 1980년대 초 이집트에서 도둑맞은 유물 5점을 돌려주지 않으면 이집트 프랑스 간 고고학 관련 문화교류를 끊겠다고 압박했다. ‘조용한 외교’ 대신 ‘채찍’을 들어 휘둘렀고 결국 프랑스는 굴복했다. 여세를 몰아 영국 대영박물관에 ‘로제타석’을, 독일 ‘신(新)박물관’에 3300년 된 이집트 왕 아크나톤 왕비인 ‘네페르티티 흉상’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두 박물관 측은 두 유물에 대해 각각 18세기 말과 20세기 초 이집트에서 발굴된 것이라며 합법적으로 획득했다고 맞서고 있다.

최근 들어 유물 반환에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곳은 이집트뿐만이 아니다.

그리스는 19세기 초 터키 주재 영국공사 엘긴 경(卿)이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 가 대영박물관에 기증한 조각 및 부조(浮彫) 더미인 ‘엘긴 마블(Elgin Marbles)’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엘긴 마블을 전시하기 위해 올해 6월 파르테논 신전 옆에 연건평 2만 m²(약 6050평)의 ‘신아크로폴리스박물관’까지 세웠다. 일종의 ‘무력시위’인 셈이다.

이란은 12일 대영박물관에 기원전 539년∼기원전 530년 페르시아 왕 키루스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23cm의 ‘키루스 원통 비문(Cyrus Cylinder)’을 빌려주지 않으면 박물관과의 모든 협력관계를 끊겠다며 두 달의 시한을 통고했다. 나이지리아도 대영박물관에 16세기 베닌 왕국 청동상 200여 점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유물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은 간단치 않다. ‘누가 유물을 소유하는가(Who Owns Antiquity?·2008년)’의 저자 미국 고고사학자 제임스 쿠노 시카고예술재단 이사장은 “유물은 현재 있는 곳에 속해 있다”며 “만약 옮겨진다면 세계의 문화유산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과거 식민지 국가들이 유물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유물 반환을 요구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고고학 관련 법률학자인 콰미 오포쿠 박사는 16일 웹사이트 ‘아프리카넷’에 “서방 국가들은 근거가 희박한 논리 뒤에 숨지 말고 반환 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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