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먹고 목숨 건진 월가, 보너스 파티가 웬말”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0일 03시 00분


백악관 - 월가 재격돌 조짐
구제금융 갚아 제재는 못해


3월 AIG의 보너스 지급 사태 이후 7개월 만에 백악관과 미국 월가가 임직원 보너스 문제로 재격돌할 조짐이다. 골드만삭스 등 월가 금융회사들이 연말 사상 최대 규모의 보너스를 지급할 것으로 예상되자 백악관 고위관계자들이 “무책임한 처사”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은 18일(현지 시간) CBS방송 ‘페이스 더 내이션’과 CNN방송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프로그램에 잇따라 출연해 “월가 대형 금융회사들의 보너스 잔치가 미국인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그는 “국민 세금인 구제금융 덕분에 살아난 금융기관들의 대규모 보너스 지급은 소득이 정체돼 있거나 떨어지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좌절감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엑설로드 백악관 선임고문도 이날 ABC방송 ‘디스 위크’에 나와 “이번 보너스 지급은 눈에 거슬린다”며 “자신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경제에 중요한 많은 중소기업이 여전히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들이 이처럼 월가 보너스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나선 것은 보너스 잔치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23개 월가 금융회사의 올해 임직원 보수지급액 총액이 사상 최대 규모인 14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올 1∼9월 매출의 절반가량인 167억 달러를 임직원 연봉 및 보너스로 쌓아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한 해 지급한 114억 달러보다 46% 늘어난 것으로, 금융 버블이 한창이던 2007년(169억 달러)과 맞먹는 것이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가 총동원돼 맹공을 퍼부었던 3월 AIG 사태 때에 비해 미국 정부 내 비판의 목소리는 다소 수그러진 상태다. 골드만삭스와 JP모간체이스 등 월가 금융회사들이 대부분 정부의 구제금융을 모두 갚았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이들을 규제할 마땅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정부가 보수를 규제할 수 있는 금융회사는 AIG,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정도뿐이다. 게다가 정부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회사의 보너스 지급을 제한하는 법안도 3월 AIG 사태 때 하원을 통과했을 뿐 상원에서는 아직 처리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 의원들도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9일 전했다. 월가 보너스 문제에 대한 논란이 커져 여론이 악화될수록 손을 못 쓰는 민주당과 미국 정부로서도 유리할 게 없기 때문이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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