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오스만주의 부활을 꿈꾼다

  • 입력 2009년 6월 13일 02시 59분


“EU가입 집착안해… 외교정책, 친서방서 중동 유턴”

시리아-이란과 화해… 유대 과시
“EU가입 위한 몸값올리기” 지적도

“이제 서쪽보다 동쪽과 남쪽을 보겠다.”

유럽연합(EU) 가입을 염원해 온 터키 외교정책이 바뀌고 있다. 기약 없는 EU 가입에 전력을 쏟기보다는 터키의 전신(前身)인 오스만 제국이 통치했던 중동과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를 ‘신(新)오스만주의(neo-Ottomanism)’라고 부르며 주목하고 있다.

터키는 실제로 시리아, 이란 등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며 중동에서 ‘마당발 외교’를 펼치고 있다. 지난달 25일 유프라테스 강 댐 방류량을 늘려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시리아로 흘러가는 물의 양을 늘려 주었고, 11일에는 지난해 9월 잠정 중단된 시리아-이스라엘의 평화 협상 중재를 다시 개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1998년 시리아가 터키와 적대 관계인 쿠르드족을 지원한 사실이 밝혀진 뒤 터키-시리아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란과는 경제부문을 중심으로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터키는 이란 사우스파르스 가스전 개발에 12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고, 양국 무역 규모는 2000년 약 10억 달러에서 지난해에는 100억 달러로 늘었다. 또 올해 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의 전쟁을 중재하는 등 이슬람 무장세력과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과거사 문제로 오랫동안 갈등을 빚고 있는 아르메니아와 4월 국교정상화에 합의했다. 아르메니아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이 ‘인종 청소’를 명분으로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며 터키를 적대시해 왔다.

터키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압둘라 귈 터키 대통령이 4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을 초청해 탈레반 소탕 문제 등을 논의했고 9월에는 파키스탄, 11월에는 아프간 지원 국제회의를 각각 개최할 예정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다르푸르 대학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는 수단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2006년 7월 양국은 군사적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지난해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은 두 차례 터키를 방문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최신호는 터키 신 오스만주의에 대해 “서유럽 국가들이 계속 EU 가입에 반대하자 이에 실망한 터키는 과거 오스만 제국이 통치했던 지역에서 평화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확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서유럽 국가들은 인구 7600만 명의 이슬람 국가인 터키가 EU에 가입하면 터키인들이 서유럽으로 대거 이주해 자국민들의 일자리가 줄고 이슬람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인터넷 뉴스매체 허핑턴포스트는 “그렇다고 터키가 EU 가입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서방국가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란 시리아 하마스 헤즈볼라 등과의 끈끈한 유대를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몸값을 올려 EU 가입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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