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달려드는 자원부국 카자흐-우즈베크 르포

  • 입력 2009년 6월 11일 02시 55분


수도 이전에 따라 1997년부터 카자흐스탄의 새 수도가 된 아스타나 신도시의 중심가. 가운데가 수도 이전을 기념해 세운 바이테렉(생명의 나무라는 뜻)탑으로 옮긴 연도에 따라 97m로 만들었다. 아스타나=김동원 기자
수도 이전에 따라 1997년부터 카자흐스탄의 새 수도가 된 아스타나 신도시의 중심가. 가운데가 수도 이전을 기념해 세운 바이테렉(생명의 나무라는 뜻)탑으로 옮긴 연도에 따라 97m로 만들었다. 아스타나=김동원 기자
“유라시아 경제중심 될 것” 자신감

광산엔 ‘부자 만들어줄 자원’ 문구도

중앙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놓고 힘을 겨루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원소주기율표에 나오는 117개 광물이 모두 매장돼 있다는 이들 국가는 ‘천혜의 자원’을 앞세워 각국에 투자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거리에서 “카레야 하라쇼(한국 좋아요)”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을 정도. 맹수를 낚아채는 독수리가 상징인 중앙아시아의 최근 모습을 르포를 통해 짚어본다.

1900년대 영국과 옛 소련연방은 인도를 손에 넣기 위해 중앙아시아에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역사는 당시를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라고 기록했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미국과 러시아는 유럽연합(EU) 중국 등과 다시 중앙아시아를 둘러싸고 ‘뉴 그레이트 게임(New Great Game)’을 펼치고 있다. 이 지역에 묻혀있는 어마어마한 자원 때문이다.

○ 카자흐 “러-中 아우를 금융허브로”

지난달 30일 카자흐스탄 경제중심지 알마티의 중심가 아바이 스트리트. 대형 간판에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사진과 ‘카자흐스탄의 밝은 미래,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내용의 대국민 홍보문이 큼지막하게 씌어 있다. 이곳에서 만난 금융인 세르게이 라슐로프 씨(54)는 “10년 전보다는 지금이 살기가 편해졌고 10년 후엔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며 “우리에겐 신이 주신 선물(자원)이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이 같은 기대감이 허풍만은 아니다. 카자흐스탄의 크롬 매장량(2억9000만t)은 세계 1위다. 우라늄 매장량은 2위, 아연은 3위로 세계 주요국이 군침을 삼키기에 충분하다. 땅 크기도 세계 9위다. 중앙아시아 5개국 중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다. 이양구 카자흐스탄 주알마티 총영사는 “웨이 투 유라시아(유럽과 아시아의 통행중심)라는 지정학적 특성과 자원이 풍부한 정치경제학적 가치가 부각돼 이곳을 보는 주요국의 시각이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국의 관심은 실제 투자로 이어지면서 경제성장의 동력(動力)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알마티 금융센터(RFCA)의 아르켄 아리스타노프 회장(43)은 “러시아와 중국을 아우르는 금융허브를 만들기 위해 금융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2003년에 2064달러에 머물렀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6년엔 5100달러, 글로벌 경제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지난해에도 8400달러로 상승 추세다. 이병화 주카자흐스탄 대사는 “올 초 카자흐스탄 정부는 150억 달러를 투입하는 경제안정화 정책을 내걸어 대내외에 경제를 중시하겠다는 의지를 선언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알마티에서 컨설팅사업을 하는 AK그룹의 양용호 대표는 “정부 의지는 강하지만 아래로 내려오면서 이전 관행이 남아 있어 아직은 기업 활동에 그다지 좋지는 않은 실정”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 우즈베크 “개방 늦었지만 곧 추격”

8일 우즈베키스탄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동남쪽으로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칼 마르크 구리광산. 채굴작업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작업통제실 건물에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는 자원’이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구리 등 자원광물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크로드 시절 최고의 영화를 누렸던 우즈베키스탄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앙아시아에서 생활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에 비해 개방 시기가 늦어 지금은 경제수준이 뒤져 있는 상태.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비서실의 고위 관리는 “개방은 늦었지만 정부가 경제개발을 주도한 한국의 성공모델을 참고해 경제력 키우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 “곧 카자흐스탄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마티·아스타나(카자흐스탄)·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나보이특구 “세제지원… 한국기업 유치 전력”▼

4일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비행기로 남서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한 나보이 공항. 이곳은 한국이 사실상 운영하는 ‘한국 공항’이나 다를 바 없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은 지난해 나보이를 물류중심지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이곳 정부가 공항 선진화를 이룬 한국에 협조를 요청해 올 1월부터 대한항공이 위탁경영을 하고 있다. 공항 건설에서 관리까지 한국 측이 맡고 있다. 노명철 공항장은 “10월 말에 화물터미널이 완공되면 1단계로 연간 10만 t의 화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보이 공항 인근에 ‘나보이 경제특구’도 건설 중이다. 공산품 불모지대에 ‘제조업의 씨앗’을 뿌리겠다는 것. 한국 기업 유치에도 열심이다. 세르게이 자하로프 대외경제부 경제특구 특사는 “세제 지원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해 한국 기업 유치에 전력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20여 개 한국 업체가 경제특구 입주를 타진 중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에 비교적 우호적인 편이다.

9일 타슈켄트의 중심가인 샤리사즈 스트리트. 거리를 메운 자동차 10대 중 7, 8대는 ‘대우(Daewoo)’ 마크가 선명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120여 개. 한국 업체들은 이곳의 낙후된 금융시스템을 우려했다. 조상식 SKY114 대표는 “은행에 돈을 예치해 두고도 찾고 싶을 때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애로사항”이라며 “외국 기업들이 꾸준하게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어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보이=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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