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사교클럽을 빼고 美 정치를 말하지 말라

  • 입력 2009년 6월 8일 02시 50분


■ 로비스트들이 군침 흘리는 3대 사교클럽

대사출신 외교관도 2년 가까이 사전 스크린 2시간 진땀면접 뒤 OK
“가장 엄선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게 사교클럽의 매력”

이태식 전 주미 한국대사는 2007년 여름 치렀던 혹독한 면접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2005년 7월 대사로 부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교클럽인 메트로폴리탄클럽에 낸 가입신청에 대한 클럽 이사회의 최종 관문이었다. 앞서 메트로폴리탄클럽은 2년 가까이 ‘인간 이태식’을 사전 스크린 했고 사회활동 전반과 인간관계까지 파악했다. 클럽이사회는 종합평가 인터뷰에서 왜 클럽의 회원이 되려는지부터 클럽이 제시한 회원의 조건에 부합하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는 활동을 설명해 보라는 내용까지 구체적이면서도 까다로운 질문을 던졌다.

2시간가량 진행된 최종면접을 치르고서야 이 전 대사는 회원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이날 면접시험에는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회장이 시종일관 엄호사격을 했다. 이 전 대사는 “이를 순수한 사교모임을 위한 클럽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지성과 교양, 전통에 대한 존중과 자부심이 한데 어우러진 엘리트들의 종합 네트워크의 장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 메트로폴리탄, 5%를 위한 비밀클럽

1863년 문을 연 메트로폴리탄클럽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이후 거의 모든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회원이 됐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이 클럽의 식당과 공공이용시설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되며 식사를 할 때도 재킷을 벗지 않는 것이 관례다. 군인이 정복을 입는 것을 제외하고 반드시 넥타이를 매야 하는 것도 기본이다. 버지니아 주 비엔나에 있는 고급사교클럽인 타워클럽의 총지배인인 존 니클로스 씨는 “17년 전 클럽 총지배인 모임 때 딱 한 번 메트로폴리탄클럽에 초대받아 가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미국 내 최상위 5%만을 위한 비밀스러운 곳”이라고 말했다.

○ 코스모스, 과학 문학 예술계 사교장

메트로폴리탄클럽이 정치적 지향이 강하다면 대사관이 밀집해 있는 듀폰서클에 위치한 코스모스클럽은 아예 ‘과학 문학 예술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공적이 있는 사람이 회원이 된다’고 정관에 회원자격을 명시하고 있다. 이 클럽은 회원자격에 ‘잠정적’이라는 꼬리표를 남긴다. 이후 회원들을 저녁식사에 부부동반으로 초대하거나 골프모임을 주선하는 등의 활동을 거쳐 행동거지를 본 뒤에야 정회원이 될 수 있으며 10년 정도 활동을 종합해 합격점을 받을 때 비로소 평생회원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 총지배인인 윌리엄 캘드웰 씨는 “1878년 창립 이래 시어도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 등 3명의 대통령과 2명의 부통령, 샌드라 데이 오코너 등 12명의 대법관, 31명의 노벨상 수상자, 56명의 퓰리처상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말했다. 헨리 키신저 전 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이나 리처드 홀브룩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사는 지금도 단골손님이다.

○ 유니버시티, 전도유망한 소장파 모임

최초 가입비 3000∼5000달러를 내는 것은 물론이고 매년 2500달러 정도의 연회비를 내야 하는 고급사교클럽도 워싱턴 주재 외교관에게는 관대한 편이다. 동남아국가 주미대사관의 A 공사는 차석대사(DCM) 위치를 이용해 유니버시티클럽의 가입비와 연회비를 면제받았다. 한덕수 대사도 워싱턴에서 가장 잘나가던 로비스트 4명이 세운 조지타운클럽에 가입하면서 이 같은 특권을 누렸다. A 공사는 “우스갯소리로 메트로폴리탄클럽은 권력을 가졌거나 지금도 힘이 있는 사람들이, 코스모스클럽은 순수예술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권력보다는 재력이 많은 사람들이, 유니버시티클럽은 비교적 젊고 전도 유망한 사람들이 모이지만 어찌 보면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말했다.

○ 유명 로비스트 2, 3개 클럽 필수

이렇게 물이 좋다 보니 고급 사교클럽들은 워싱턴 로비스트의 주된 활동무대가 되고 있다. 힘 좀 쓴다는 로비스트는 2, 3개의 고급 사교클럽 회원권을 갖고 있으며 클럽의 시설에 행정부 고위 관리, 기업인을 초청해 고급스러운 접대를 하며 정보를 얻고 친분관계도 넓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선임보좌관을 지냈으며 30년 가까이 메트로폴리탄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비드 랙스 씨는 사교활동의 주된 이유로 “가장 엄선된 사람과 가장 정제된 환경에서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을 꼽은 뒤 “하지만 이를 귀족클럽으로 보기보다는 지적 호기심과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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