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美-이슬람 새로운 시작 만들러 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6월 5일 03시 00분



■ 카이로서 화해의 연설
“이슬람은 미국의 일부… 폭력행위와는 맞설것”
팔 “오바마 좋은 출발”… 이 “놀랄것 없는 내용”

“이슬람은 언제나 미국의 일부였습니다. 우리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신뢰를 바탕으로 한 파트너십으로 미국과 이슬람의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 갑시다.”
4일 이집트 카이로대 대강당. 내외신 기자와 학생을 포함한 청중 3000여 명에게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연단 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진지한 연설이 이어졌다. 미국의 아랍권에 대한 메시지가 담긴 이날 연설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첫 중동 순방의 하이라이트. 그는 이 자리에서 9·11테러 이후 악화된 미국과 이슬람권의 관계를 복원하고 협력을 모색하자고 촉구했다.
○ “직면한 7가지 현안”
오바마 대통령은 “나는 오늘 미국과 전 세계 무슬림 간의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고자 이 자리에 왔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이슬람 문명의 우수성, 그 문화가 미국에 끼친 영향을 열거하며 “이슬람은 미국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상호 번영을 위해 긴장을 유발해온 현안을 직접 대면할 필요가 있다”며 △폭력적 극단주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중동 핵 문제 △(중동의) 민주주의 등 7가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폭력적 극단주의에 대해 “미국은 이슬람과 전쟁을 하지 않지만 죄 없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행위에 철저히 맞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팔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은 이스라엘과 역사적 문화적으로 뗄 수 없는 결속력을 갖고 있다”면서도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미국이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은 과거 협정을 깨는 것인 만큼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란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한 나라의 핵 보유는 모두에게 위협”이라며 저지할 뜻을 내비쳤다. 그는 연설에 앞서 “아살라무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고 아랍어로 인사말을 건네고 연설 도중에도 “코란에 따르면…”이라며 코란의 문구를 자주 인용했다.

이날 연설 내용은 CNN방송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고, 13개 언어로 번역된 뒤 페이스북과 구글 등 웹사이트를 통해서도 200여 개국에 서비스됐다. 15억 명에 이르는 무슬림이 이번 연설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백악관의 특별 조치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한 번의 연설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지나친 기대감을 경계했다.
연설이 끝난 뒤 인터넷에는 이슬람권의 대체적인 호평 속에 “기대 이하”라는 반응도 있었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좋은 출발”이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놀랄 것도 없는 내용”이라고 짧게 논평했다.

○ 역사를 바꾸는 명연설 될까
역대 미 대통령들의 외국 방문 연설은 ‘적’으로 인식되던 국가의 시민을 감동시키고 국면을 전환하는 외교적 힘을 발휘한 적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독일 베를린 연설이다.
미국과 동유럽권의 냉전 시기에 그는 “공산주의와 자유세계 사이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이슈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면 베를린으로 오게 하자”고 역설했다. 24년 뒤인 1987년 같은 곳을 방문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미스터 고르바초프, 자유화와 평화와 번영을 원한다면 이 문을 여시오. 이 장벽을 무너뜨리시오”라며 냉전 종식을 촉구했다. 명연설로 기록된 그의 이날 외침 이후 2년여 만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반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9·11테러 직후 연설은 전 세계를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분열을 조장하고 테러리스트를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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