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미디어기업 “中에 실망, 인도로 간다”

  • 입력 2009년 5월 5일 02시 56분


규제에… 불법복제에… 잇단 사업이전

MTV회장 “13억 시장의 환상에 취해있었다”

“‘13억 시장’의 환상에 취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일찍 기대한 것 같다.”

중국 진출 이후 실적이 지지부진하자 MTV인터내셔널의 윌리엄 로디 회장은 이렇게 토로했다. 오랫동안 공을 들였지만 중국 정부의 검열, 불법 복제, 투자 제한 등으로 기대만큼 결실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4일 뉴욕타임스는 “중국 시장에 실망한 미국 미디어 기업이 대거 중국을 떠나 또 다른 기회의 땅인 인도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 13억 중국 시장 환상 깨지다

타임워너의 자회사 AOL은 지난달 중국 진출 사업을 포기했다. 뉴스코퍼레이션도 최근 중국 지사 규모를 줄였다. 대대적인 중국 진출을 선언했던 최근 몇 년간의 행보에 비춰 볼 때 극히 이례적인 조치다. 서머 레드스톤 바이어컴 회장은 중국 관리들을 수시로 베벌리힐스 자택에 초청했고 미국영화협회(MPAA) 댄 글리크먼 회장도 틈만 나면 중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검열과 규제에 막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미디어 기업들의 좌절감이 커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미디어 시장을 개방하면 사회주의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해외 자본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워너브러더스는 전 세계에서 1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영화 ‘다크나이트’의 중국 개봉을 돌연 취소했다. 이 영화의 홍콩을 배경으로 한 장면에서 중국인이 악당으로 표현된 부분을 문제 삼을까 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한 것이다.

불법 복제로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12월 타임워너는 중국에 온라인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불법복제가 기승을 부리면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미국은 중국 내 영화 소프트웨어 음악 등의 불법 복제로 매년 35억 달러의 손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 방송 시장에 진출해도 위성방송의 시청권역이 호텔과 외국인 집단거주지역으로 한정돼 있다. 다른 다국적 소매기업들이 중국에서 눈부신 매출 신장을 거듭하는 것과 비교할 때 초라하기 짝이 없다.

○ 11억 인도, 기회의 땅으로

미디어 기업들은 역시 큰 시장이면서도 해외 미디어에 대한 통제가 적은 인도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인도에선 신문사와 일반 기업, 외국인이 방송을 소유하는 데 제한이 거의 없다. 단지 외국인은 뉴스 채널 지분의 26% 이상을 갖지 못하게 할 뿐이다. 11억 명의 거대한 인구에다 젊은 층의 비중이 높고 TV 보급률도 낮아 성장 잠재력이 무한하다.

MPAA는 3월 인도 뭄바이에 처음으로 사무실을 열었다. 터너방송은 3월 인도에 ‘WB’라는 영어방송 채널을 새로 개설했다. 1월에는 힌두어 방송도 시작했다. 지난해 종합 엔터테인먼트 채널 ‘컬러스’를 시작해 6개월 만에 전국 시청률 2위를 달성한 바이어컴도 인도 투자에 ‘다걸기(올인)’하고 있다. 뉴스코프의 20세기 폭스와 스타 TV가 합작한 ‘폭스 스타 스튜디오’도 인도의 ‘볼리우드’ 영화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이 밖에 소니엔터테인먼트, 월트디즈니, BBC 등 글로벌 미디어그룹들도 인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