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권초 김현희씨 만나고 싶다고 수차례 편지…전달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3월 6일 02시 59분



다구치 야에코 씨의 오빠 이즈카 시게오 씨가 지난달 26일 도쿄에 있는 납치피해자가족회 사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다구치 씨가 실종된 뒤 다구치 씨의 아들을 입양해 키워왔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다구치 야에코 씨의 오빠 이즈카 시게오 씨가 지난달 26일 도쿄에 있는 납치피해자가족회 사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다구치 씨가 실종된 뒤 다구치 씨의 아들을 입양해 키워왔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인터뷰]다구치 오빠 이즈카 시게오 씨

《북한에 납치돼 김현희 씨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던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 씨의 오빠 이즈카 시게오(飯塚繁雄·70) 씨는 “부모님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다구치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 눈을 감으셨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도쿄에 있는 납치피해자가족회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과 김 씨의 만남이 국제사회가 납치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일본의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를 맡고 있다.》

“다구치 아들은 내가, 딸은 이모가 양자로

아들 성인될 때까지 온가족이 비밀 지켜

‘언제 돌아오려나’ 마음 고생하던 어머니

17년 ‘통한 세월’ 눈물로 지새다 돌아가셔

다구치 아들 고이치로가 친엄마 느끼게

金씨에게 동생 北생활 생생히 듣고싶어

한국 정권 바뀐뒤 납치문제 해결할 의지

日정부와 긴밀 협력해 구체적 조치 기대”


―다구치 씨에 대한 기억은….

“동생은 명랑하고 밝았다. 이혼한 이후 바(bar)에서 일하며 아들딸을 키울 정도로 생활력도 강했다. 북한 공작원이 김 씨의 일본어 선생을 물색하다 결혼 경험도 있고 젊은 데다 일본 잡지를 통해 최신 유행도 잘 아는 다구치를 점찍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피랍 이후 가족생활은….

“처음엔 실종사건인 줄 알고 전국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러다 어머니는 14년 전, 아버지는 25년 전 돌아가셨다. 살아생전 내내 딸 걱정을 했다. 언제나 돌아올까 눈물 흘리다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납치 사실을 끝내 몰랐고 어머니는 생전에 들었다.”

―다구치 씨의 자녀는 어떻게 자랐나.

“아들(고이치로, 당시 1세)은 내가, 딸은 이모(다구치 씨의 언니)가 키우기로 하고 양자로 입적시켰다. 고이치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자라는 사실을 모르게 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충격을 받아 방황할까 봐 염려했다. 내 자식도 3명이 있는데, 이들에게도 절대 ‘진실’을 입 밖에 내지 말도록 입단속을 시켰다. 20년 동안 온 가족이 비밀을 지켰다.”

―고이치로 씨가 ‘납치 피해자의 아들’이란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반응은 어땠나.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가족사진을 처음 본 것도 그때다. ‘따뜻한 엄마’라며, 직감적으로 친엄마를 알아보더라.”

―피랍 당시 상황은….

“1978년 6월 어느 날 갑자기 없어졌다. 당시 다구치는 22세였다. 그런데 동생의 방에 유서나 메모 같은 게 전혀 없었다. 단순 실종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갈 동생이 아니다.”

―북한에 납치됐다는 걸 언제 알게 됐나.

“1991년 일본 경찰이 김 씨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이은혜’가 다구치라고 결론 내렸다.”

―당시 일본에서의 반응은….

“처음엔 정부나 사회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납치 피해자들이 스스로 북한에 간 것 아니냐는 의심도 일부 있었다. 정부도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했다. 1997년 가족회가 결성된 이후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북한은 다구치 씨가 198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요코다 메구미(橫田惠)의 유골도 유전자(DNA) 분석 결과 거짓으로 드러났다. 북한 주장은 거짓이다. 교통사고 관련 사진도 제대로 없다. 납치 피해자의 사망진단서도 복사한 것처럼 모두 같은 모양이었다.”

―다구치 씨가 북한에서 한국인 납치 피해자와 결혼했다는 설도 있다.

“귀국한 납치 피해자한테서 2005년에 그런 얘기를 들었다.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 씨를 만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데….

“노무현 대통령 초기인 6년 전에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몇 번이나 보냈으나,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김 씨의 NHK 인터뷰를 보면 편지를 안 본 게 드러난다.”

―김 씨에게서 무슨 말을 가장 듣고 싶나.

“고이치로가 친엄마를 느낄 수 있도록 다구치의 북한 생활의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다. 얼마나 불쌍하게 살았겠느냐. 자녀와 부모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일본에 돌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듣고 싶다.”

―한국의 납치피해자가족회를 알고 있나.

“전에는 연대 활동도 했다. 나도 한국에 건너가 납치 피해자 문제 해결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금은 연락이 뜸하다. 한국은 납치 피해자 489명으로 가장 큰 피해국이다. 정보공유 등 연대 활동을 하고 싶다.”

―양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의 정권교체 이후 양국 정부가 협력해 납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앞으로 구체적 조치를 기대한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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