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메리칸 거센 파워… 뉴욕 韓人상권 속속 접수

  • 입력 2009년 3월 3일 02시 58분


지난달 27일 뉴욕 시 퀸스 구 플러싱 거리 풍경. 대표적 한인 상권이던 이곳엔 이제 중국계 가게가 즐비하다. 중국계는 최근 미국에서 늘어나는 이민자들을 바탕으로 정치, 교육,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약진을 하고 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지난달 27일 뉴욕 시 퀸스 구 플러싱 거리 풍경. 대표적 한인 상권이던 이곳엔 이제 중국계 가게가 즐비하다. 중국계는 최근 미국에서 늘어나는 이민자들을 바탕으로 정치, 교육,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약진을 하고 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한국어 간판 밀어내고 곳곳 차이나타운

‘華商’ 경제력 바탕 정치적 영향력 키워

텍사스주 공립고등학교 3곳 우수학생

중국계 30여명… 한국계는 3명에 그쳐

#장면1

"주로 가게를 임차해서 장사하는 한국계 이민자들과 달리 중국인들은 여러 명이 돈을 모아 가게를 삽니다. 그러니 미국의 곳곳이 '차이나타운화'되는 거지요."(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 센터 김동석 소장)

1일 미국 뉴욕 시 퀸스 구 플러싱.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인들이 상권을 장악한 대표적 지역으로 꼽혔던 동네다. 그러나 중심지 어디를 둘러봐도 한글 간판은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 중국어와 영어가 함께 쓰인 중국계 가게다. 이 지역 시의원도 중국계다.

한 교민은 "2년전쯤 한국인 소유 야채 가게가 중국인들에게 넘어간게 메인스트릿 일대에서 마지막 한국계 상점이었다"고 말했다.

#장면 2

미국 매사추세츠 주 디어필드 고교.

보스턴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의 전원 풍경 속에 있는 이 학교는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 사립기숙학교(보딩스쿨)다. 학비가 1년에 4만 달러 이상 들지만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중학생들이 치열한 입학 경쟁을 벌인다.

설 연휴인 1월 27일 이 학교 입학처 앞에 중국인 중학생과 학부모 20여 명을 태운 관광버스가 들어섰다. 미국 동북부 명문 보딩스쿨들을 탐방하는 중국인 관광단이다. 이들은 입학처의 중국계 직원으로부터 입학사정 절차 등을 자세히 들은 뒤 교내 곳곳을 둘러봤다. 이처럼 미국 차세대 지도자 양성소로 불리는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주의 명문 사립학교엔 중국계 유학생들의 지원이 급증하고 있다.

미국 내 중국계가 약진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주 개리 라크 전 워싱턴주지사를 상무장관에 지명함으로써 스티븐 추 에너지장관에 이어 중국계가 2명이나 내각에 포진하게 됐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도 대만출신 여성 이민자인 일레인 차오 씨가 8년간 노동장관으로 재직했다.

행정부, 재계 뿐만 아니라 일선 교육현장에서도 중국계의 약진이 확인된다.

동아일보는 텍사스대(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이길식 교수의 도움으로 텍사스 주 플라노 시 공립 학교 3곳의 2006~2007년도 '내셔널 메릿 스칼라십' 선발자 명단을 입수해 출신 국적을 추정해봤다. 내셔널 메릿 스칼라십은 일종의 전국학력평가로 고교 2년 때 PSAT란 시험을 쳐서 뽑는데 2007년엔 응시자 150만 명 가운데 1만6000명가량이 우수학생으로 선발되었다.

표본으로 삼은 3개 학교에선 총 115명이 뽑혔는데 성(姓)씨로 분류해보니 중국계로 추정되는 학생이 30~40명에 달했다. 한국계로 보이는 성씨는 3명 가량이었다.

플라노 시는 미국내 인구 25만 이상 도시 가운데 빈곤층 비율이 가장 낮은 부유한 지역이다. 학군이 좋아 한국인들도 많이 산다. 아시아계가 인구의 14% 가량이다.

이 교수는 "예전엔 공부에 관한한 한국계 학생들이 최고 그룹으로 통했지만 갈수록 그 자리를 중국계 학생들이 넘보고 있다"며 "중국계의 이민 역사가 더 오래되고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 생각해 볼 일"이라고 말했다.

한인 밀집지역인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카운티의 7학년(중학 1학년)을 대상으로 실시된 2007년 전국평가시험(CAT/6)에서도 중국계의 평균 성적은 영어 85점, 수학 90점으로 한국계 평균(영어 77점, 수학 85점)보다 높았다. 물론 카운티 평균(영어 57, 수학 58점)에 비하면 한국계 학생들의 성적 역시 매우 높은 것이다.

중국계 가정의 교육열도 뜨겁다. 명문학군으로 꼽히는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입시학원들은 시간당 40~50달러의 비싼 학원비에도 아랑곳없이 중국계 수강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

미국내 유학생 숫자에선 한국출신이 계속 1위지만 아이비리그대학과 주요 주립대 가운데는 중국계 재학생이 한국계 보다 훨씬 많은 곳이 여럿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제3의 이민 파도'의 산물로 본다. 제3의 이민파도는 19세기 초기 이민, 20세기 초반기의 2기 이민에 이어 1980년대 중후반 중국계 이민이 급증한 현상을 지칭한다.

현재 중국계 이민자는 353만 명으로 미국 인구의 1.2%다. 한국계는 155만 명으로 0.5%다.

중국계는 늘어나는 수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급속히 키워가고 있다.

1996년 라크 상무장관 내정자가 워싱턴 주지사 선거에 나섰을때 중국계 커뮤니티는 최초의 중국계 주지사를 만들기 위해 '중국인 100인 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일레인 차오 씨가 아시아계 최초의 여성 장관으로 발탁된 배경에는 2000년 대선때 부시 후보 캠프의 '파이오니아 1만명'(1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해 올 수 있는 핵심 지지층)의 선두그룹에 포진했던 중국계 상공인들의 힘이 컸다.

김동석 소장은 "중국계 미국인들의 특징은 '모국을 잊어버려라'로 요약된다"며 "과거 유대인들이 그러했듯 중소상인들의 소액 다수 정치 모금도 활성화돼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워싱턴=하태원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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