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미디어 그룹을 가다]<5>獨 베텔스만

  • 입력 2009년 2월 4일 03시 01분


TV 신문 잡지 책… 가능한 모든 미디어로 콘텐츠 전달

인쇄소로 출발… 방송 출판 통신 인터넷으로 영역 확장

계열사 100곳 직원 10만명 ‘세계4대 미디어그룹’ 성장

휴대전화-e북 등 뉴미디어 결합… 디지털시대 선제대응

《베텔스만=출판사? 아니다. 베텔스만은 우선 방송이고 잡지 회사다. 또 인터넷 비즈니스 회사다. 물론 베텔스만은 출판사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일반서적 출판그룹이 베텔스만에 속해 있다. 베텔스만은 CD DVD를 찍어내는 회사이기도 하고 거대한 인쇄시설을 갖추고 기업체에 각종 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지난달 15일 프랑스 파리에서 베텔스만 본부가 있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귀테르스로로 가는 동안 수많은 이명(異名)을 가진 베텔스만을 마주쳤다.》

파리 북역에서 국제선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서점에서 유명인 잡지 ‘갈라’를 집어들었다. 영미권의 ‘피플’과 비슷한 ‘갈라’는 베텔스만의 잡지부문 그루너+야르 그룹에서 나온다.

독일 쾰른까지 가는 열차에 올라타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와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을 펼쳐들었다.

두 신문 방송프로그램면 맨 윗단에 놓인 시청률이 가장 높은 6개 방송 중에 각각 M6와 RTL이 들어있다. M6와 RTL은 베텔스만의 방송부문 RTL 그룹에 속한다.

쾰른에서 독일 국내선 열차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다시 서점에 들렀다. 시사주간지 슈테른이 슈피겔과 나란히 놓여 있다. 화려한 사진물 위주로 기사를 싣는 잡지 GEO도 눈에 띄었다. 슈테른, GEO는 그루너+야르 그룹에서 나오는 잡지다.

열차로 귀테르스로에 도착해 호텔로 가면서 시내를 둘러봤다. 베텔스만의 다이렉트 그룹에 속한 북클럽 ‘데어 클럽(Der Club)’을 볼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인 추리작가 존 그리셤의 ‘피자를 위해 뛰다(Playing for Pizza)가 ‘터치다운’이란 제목으로 독일어로 번역 출간돼 꽂혀 있었다. 베텔스만의 출판부문 랜덤하우스 그룹에서 나온 책이다.

베텔스만 본부를 방문했다. 그루너+야르 그룹 본부는 함부르크, 랜덤하우스 그룹 본부는 뉴욕, RTL 그룹 본부는 룩셈부르크에 있다. 귀테르스로에는 다이렉트 그룹과 미디어 서비스 제공회사인 아르바토 그룹의 본부가 있고 이들 5개 그룹을 총괄하는 총본부가 있다.

직원의 안내로 아르바토 그룹의 몬 인쇄소(Mohn Druck)를 둘러봤다.

유럽 최대의 옵셋 인쇄기를 갖춘 이곳은 1835년 조그만 인쇄소에서 직원 14명으로 출발해 오늘날 100여 개 기업에 직원 10만여 명을 거느린 세계 4대 미디어 그룹 중 하나인 베텔스만의 원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독일 경건파 운동의 중심지 귀테르스로에서 기독교 성가를 주로 출판하던 베텔스만은 인기를 얻어가던 소설로 분야를 넓힌 후 독자들을 대상으로 북클럽을 조직하며 몸집을 키워나갔다.

인터넷에서 가격을 비교 검색해 책을 사는 시대에 회원에게만 책을 파는 북클럽 모델이 오늘날에도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베텔스만의 기업사가(史家) 우베 타크 씨는 “1950년 처음 등장한 북클럽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며 “당시만 해도 주로 부르주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책의 세계에 노동자 계급을 회원으로 끌어들여 신분 상승의 느낌을 갖게 해줬고 그것이 성공비결이었다”고 말했다.

베텔스만이 북클럽에서 발전해 현대적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인하르트 몬 씨가 경영권을 이어받으면서부터다. 현재 88세인 라인하르트 몬 베텔스만 지주회사(BVG) 이사회 명예의장을 직원식당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는 지금도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몬 의장은 경영을 맡으면서 ‘내적 다원주의’를 추구했다. 그는 1972년 발표한 논문 ‘대형 출판사와 사회적 책임’에서 “베텔스만과 같은 거대 미디어 그룹은 그 어떤 정치적 추세에도 얽매여서는 안 되며 모든 사회적 흐름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잡지로 사업 영역을 넓혀 1969년 그루너+야르의 지분 25%를 인수한 뒤 점차 지분을 늘려 독일 미디어 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1984년 독일에서 민영방송의 시대가 처음 열렸을 때 최초의 독일어 민영방송 RTL 플러스의 지분을 획득했다. 오늘날 RTL 그룹은 유럽 최대의 방송사로 베텔스만 그룹 전체의 이익 중 50% 이상을 차지하는 알짜 그룹이 됐다.

2000년에는 파이낸셜타임스를 발행하는 영국의 피어슨 그룹과 합작으로 ‘파이낸셜타임스 도이칠란트’라는 신문을 발행했다.

베텔스만은 1998년 토니 모리슨, 마이클 크라이턴 등의 작가가 소속한 미국 랜덤하우스 출판사를 인수해 출판계의 글로벌 주자로 올라선 이후 2003년에는 존 그리셤, 스티븐 킹 등의 작가가 몸담고 있는 독일 뮌헨의 하이네 출판사를 인수해 덩치를 키웠다.

특히 랜덤하우스 인수 프로젝트는 당시 코드명 ‘프로젝트 블랙’으로 불렸으며 이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면서 베텔스만은 독일어권과 영어권을 넘어서 세계 최대의 일반서적 출판사로 거듭나게 된다.

당시 베텔스만은 ‘30년을 투자해 세계 1위 기업이 될 수도 있고, 세계 1위 기업을 인수해 30년을 단축할 수도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심영섭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베텔스만은 단기간에 돈을 벌기 위한 금융투자보다는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상태에서 관련 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고집한다”고 말했다.



귀테르스로=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밑에서 스스로 결정하는 ‘脫중심화’로 전문성 키워”▼

리에페 총본부 부사장

“소비자는 이제 TV만, 혹은 신문만, 혹은 잡지만, 혹은 책만 갖고 있지 않다. 오늘날 베텔스만의 목적은 고객들이 보기를 원하는 모든 방법으로 우리가 가진 콘텐츠를 보게 하는 것이다.”

토비아스 리에페(사진) 베텔스만 총본부 부사장을 지난달 15일 독일 귀테르스로 베텔스만 본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뉴 미디어 시대에 베텔스만이 나아갈 길은….

“RTL 그룹은 TV 라디오 영화를 만들지만 소비자가 온라인이나 휴대전화로도 프로그램을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한다. 그루너+야르 그룹은 신문 잡지를 펴내면서 단지 프린터 버전뿐만 아니라 온라인 버전을 낸다. 랜덤하우스 그룹은 책뿐만 아니라 e북도 낸다. 각 부문이 디지털화의 도전에 어떻게 적응할지 스스로 모색한다.”

―각 부문은 어떻게 시너지(synergy)를 실현하는가.

“과거에 우리는 소비자에게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만 갖고 있었다. TV 라디오 신문 잡지 책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100가지가 넘는 수단을 갖고 있다. 우리는 콘텐츠를 가능한 한 많은 수단으로 사용자에게 전달할 방법을 궁리한다. 과거 그루너+야르는 요리를 종이로만 보여 줬지만 지금은 비디오 화면으로 실제 요리하는 방법을 보여 준다. 각 부문은 지식과 기술을 공유해 어떻게 소비자에게 콘텐츠를 전달할 것인지 궁리한다. 위에서 어떻게 하라고 시키지 않는다. 각 부문은 자기 분야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베텔스만의 ‘탈중심화’ 정신이다.”

―단순화와 다양화, 어느 것이 좋은가. 가령 독일의 악셀 슈프링거 그룹은 신문 잡지에 집중돼 있다.

“경제위기를 고려하면 다양화가 장점을 갖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짙은 안개가 낀 상황에 비교할 수 있다. 운전자는 200m 앞이 어떤지 모른다. 우향할지 좌향할지를 결정할 때 운전자는 최대한 신중을 기해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기업의 운전자는 직원이다. 라인하르트 몬 씨는 직원들에게 스스로 기업가인 것처럼 행동하라고 강조했다. 위에서 결정해서가 아니라 밑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그것을 통해 다양한 사업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베텔스만에 깊게 뿌리내린 기업가 정신이다.

―북클럽이란 사업모델이 여전히 유효한가.

“지난해 취임한 하르트무트 오스트로우키 최고경영자(CEO)는 북클럽이라는 사업모델을 검토했다. 그 결과 북클럽은 유럽에서만 집중하고 이익이 나지 않는 작은 북클럽은 팔아버리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이 매우 강하고, 중국은 북클럽에 그리 익숙하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미국의 북클럽을 팔고 중국의 클럽 비즈니스를 닫은 이유다.”

귀테르스로=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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