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영식]‘이-팔 분쟁’에 침묵하는 한국외교의 고민

  • 입력 2009년 1월 10일 03시 04분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중동의 전쟁을 물질과는 다른 정신과 이념의 상징인 올리브 나무를 둘러싼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그 중동의 싸움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은 채 더욱 격화되고 있다.

한국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그들만의 전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국익외교’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과거에 한국은 미국의 ‘이스라엘 편들기’에 편승하면 충분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중동 국가들은 대부분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 공급원이자 거대한 수출 시장인 이곳에선 요즘 한류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외교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정부는 태도 표명을 자제하는 ‘로키(low-key)외교’로 대응하고 있다. 정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에 무력사용 중단과 휴전 복귀를 촉구하고 3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발표한 것 이상으로 의견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대응은 대규모 민간인 희생자 발생을 사실상 외면한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의 유엔학교 공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간인에 대한 무력사용은 유엔헌장을 비롯한 각종 국제협약이 금지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런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하마스의 자제를 촉구하는 방안을 검토했을 것이다.

한미동맹 차원에서 이스라엘의 강력한 후원자인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렇다고 갈수록 밀접해지는 중동 국가의 정서를 마냥 무시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반미 정서로 가득한 중동의 레바논에 동명부대를 파병한 한국으로선 동명부대의 안전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중동 위기가 장기화되면 버락 오바마 미국 차기 행정부의 정책 검토과정에서 한반도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앞으로 한국은 국력 신장에 따라 복잡한 국제 현안에 의도하지 않게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러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침묵에 가까운 ‘무채색 외교’로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성장할 여지를 오히려 좁히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이제야말로 글로벌 한국의 외교가 창의력을 발휘할 때다.

김영식 정치부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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