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 3龍을 가다]<中>위기 맞은 ‘아시아 금융허브’ 홍콩

  • 입력 2008년 10월 21일 02시 59분


미국發 ‘금융지진’에 휘청… “50% 감원 쓰나미 올수도”

《홍콩의 빅토리아 피크 중턱 ‘미드 레벨’ 지역은 최고급 주택가로 꼽힌다. 100여 m² 아파트의 한 달 월세가 최고 1000만 원에 이르는 곳도 있어 외국계 금융기관 고소득자가 주로 산다. 15일 미드 레벨을 가로지르는 로빈슨 로드. 길 오른편으로 줄지어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마다 ×표시(할인한다는 뜻)를 한 안내문이 가득했다. ‘놀라운 가격’ ‘위기에서 기회를 잡으세요’ 등의 설명도 보였다. 이곳의 매매가 및 임대료가 내려가기는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태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하용이 한국은행 홍콩사무소장은 “아시아 금융 허브를 자처하는 홍콩에 불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말했다. 매연으로 뿌옇게 덮인 홍콩 하늘만큼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외국 금융기관 직원들 하나 둘 떠나

주택-사무실 거래도 5년만에 최저

명품 쇼핑몰 매출 몇달새 20% 줄어

“中자본까지 유출땐 경제재앙 우려”

○ 홍콩 금융업 최대 50% 축소 전망

‘홍콩 금융계의 빙하기는 이제부터다.’

홍콩에서 만난 금융계 인사들의 공통된 얘기다. 이들은 각국의 공조로 대형 금융기관의 부도 가능성은 크게 줄었지만 홍콩 내 금융업 규모는 최대 50%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반 예금이나 수출입 금융 등 ‘기본적인 업무’ 외에 그동안 투자은행이 해왔던 많은 업무가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무라증권이 리먼브러더스 자회사를 합병하듯 금융회사 수도 줄고 인력 또한 크게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 금융계 전문가는 “살아남은 금융회사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조직과 인원의 대폭적인 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콩 정부는 2010년 말까지 홍콩의 23개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약 6조 홍콩달러의 예금을 지급 보증한다고 발표했다. 2007년 이후 계좌별로 10만 홍콩달러까지만 보증하던 것을 무한대로 확대한 것.

존 창(曾俊華) 재정사장은 “다른 국가들이 예금 보호를 강화해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 부동산과 실물 경제도 직격탄

미드레벨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로렌스 웡(黃思朗) 씨는 “외국 금융기관 직원들이 하나 둘 떠나고 수요 자체가 줄자 집주인들이 이미 내놓은 집 가격을 내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은 물론 사무실 거래도 5년 내 최저치로 떨어졌다. 대형 부동산 중개회사인 센트럴라인에 따르면 3분기(7∼9월) 사무실 중개 건수는 476건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40.7% 떨어졌으며, 분기별로는 2003년 4분기(10∼12월) 이후 최저치다.

불황으로 센트럴라인도 2600여 명의 직원 중 500명가량을 줄일 예정이다. 직원 수 3200여 명의 미드랜드홀딩스도 약 1000명을 줄일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홍콩 섬의 대표적 명품 쇼핑몰인 퍼시픽플레이스 직원들은 “최근 몇 개월 사이 고객과 판매액이 2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최소 일주일 전 예약해야 했던 시내 고급 음식점도 예약이 필요 없고 지난달 매출도 전년 대비 20∼30% 줄었다.

업체 부도도 잇따랐다. 62년 역사를 가진 전자제품 체인업체 타이린(泰林)전기가 이달 들어 의류업체 유라이트에 이어 두 번째로 문을 닫았다. 지난달에도 시계 제조업체 피스파크홀딩스와 수영복 생산업체인 택패트인터내셔널 등이 문을 닫았다.

9월 법원에 대한 개인파산 신청 건수도 1152건으로 8월 대비 34% 증가했다. 기업 파산 신청도 9월 60건으로 전달보다 22% 늘었다.

더글러스 아더(금융법) 홍콩대 교수는 “홍콩의 가장 큰 문제는 절대적 불확실성(absolute uncertainty)”이라며 “아시아 외환위기 때는 문제를 알고 해결 방안을 가늠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금융위기의 정확한 정체를 모르고 더욱이 금융위기가 홍콩과 중국에 어떻게 여파를 미칠지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 홍콩의 미래, 중국에 달려

1997년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반환되자 이민 및 자본 유출이 일어나 홍콩 경제는 상당 기간 위축됐다.

하지만 사스가 덮친 2003년 홍콩의 경제가 추락하자 중국이 구세주로 나섰다. 중국 본토인의 홍콩 방문을 허용하고,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체결을 통해 홍콩 상품의 중국 수출을 확대하는 등 홍콩 경제에 활로를 제공했다.

홍콩의 대외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2001년 40.3%에서 2006년 46.4%로 높아졌다. 2006년 중국의 홍콩에 대한 직접투자도 140억1000만 달러로 투자액에서 1위다.

이제 홍콩 경제 성장의 핵심 축은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어떻게 긴밀하게 유지하고 발전시키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박형준 하나은행 홍콩지점장은 “중국이 홍콩 부동산 등에 투자한 자본이 빠져나가면 그야말로 홍콩 경제에는 재앙이 될 것”이라며 “중국이 홍콩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홍콩=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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