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륜 범죄 끝까지 응징”

  • 입력 2008년 7월 25일 02시 59분


‘보스니아의 학살자’ 라도반 카라지치가 지난주 전격 체포되자 그의 재판을 맡게 될 구 유고전범재판소(ICTY)도 분주해졌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TY의 재판관과 검사들은 카라지치가 이번 주 안에 이송돼 올 것에 대비해 자료 검토를 비롯한 준비 절차에 들어갔다. 법정 휴회 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재판을 시작해 최대한 빨리 심리를 진행할 계획이다.

ICTY에서 활동 중인 권오곤 재판관은 24일 “ICTY는 한시적으로 2010년까지 운영돼 모든 재판을 그때까지 끝내도록 돼 있지만 카라지치 문제로 이를 연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전했다.

카라지치가 체포되기 직전에는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찰이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처럼 거물들을 상대로 한 형사처벌 절차가 잇따르면서 국제사회의 ‘정의 바로세우기’ 작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 상설 국제형사재판소 2003년 출범

수단 다르푸르 사태와 보스니아 학살, 아프리카 각국을 피로 물들인 내전, 그 과정에서 독재정부 및 반군들이 저지른 집단학살과 성폭행 등 각종 반인륜 범죄….

ICTY나 ICC 같은 국제 형사법정은 이런 현실에 눈감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의 의지에 따라 탄생했다. 1993년 창설된 ICTY는 지금까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 등 161명을 기소해 115명에 대한 재판을 마쳤다.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는 50만 명 이상이 학살된 르완다 내전 관련 재판을 진행 중이다.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도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의 재판을 시작했다.

ICC는 이 같은 국제형사법정들이 특정 사건에 대해서만 한시적으로 운영돼 온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첫 ‘상설 독립 국제형사재판소’다. 2003년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콩고민주공화국의 반군지도자 토마 루방가와 우간다 반군지도자 조지프 코니 등을 기소했다.

시러큐스대 데이비드 크레인 교수는 이런 재판소들에 대해 “앞으로 100년간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자가 없도록 하기 위한 국제적 법률 체계의 초석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프레더릭 콕스 국제법센터’의 마이클 샤프 국장도 “국제형사법정을 ‘하위직 몇 명만 단죄하는 상징적 기관’으로 치부하던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 평화냐 정의냐

그러나 국제법정의 활동에는 걸림돌도 많다. 특히 각종 조사를 본격화하고 있는 ICC는 각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의 경우 벌써부터 아랍권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연일 ICC의 조치를 성토하며 ‘바시르 구하기’에 나섰다. ICC 비준 자체를 거부해 온 미국도 “이번 일에 ICC 편을 들지 않겠다”고 밝혔고 중국과 러시아 등 수단의 자원을 이용하는 국가들도 수단 정부를 옹호하는 모습이다.

ICC를 지지하는 국가들조차 “바시르가 유엔평화유지군에 보복을 가하거나 국제단체의 구호활동을 금지시켜 오히려 더 많은 피해자를 낼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ICTY의 초대 재판소장을 지낸 안토니오 카세스 씨조차 이번 체포영장 청구에 대해 갖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아랍뉴스’에 기고해 ICC를 당혹하게 했다. AP통신은 “ICC는 결국 정치의 산물”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각국의 이해관계 속에 고전하는 정의 구현의 딜레마를 꼬집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국제형사법정은 개별 국가에 대한 법적용에 빈틈이 많은 국제법의 성격 때문에 정의 실현의 추진력이 떨어진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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