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 명소는 외국기업-부호들 광고판?

  • 입력 2008년 5월 27일 02시 57분


웹 매거진 슬레이트가 최근 보도한 ‘개봉박두, 삼성 워싱턴 모뉴먼트’라는 제목의 기사. 슬레이트는 미국 주요 대학과 도서관, 경기장의 이름이 해외 기업들에 팔려나가는 주요 ‘수출 품목’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 슬레이트
웹 매거진 슬레이트가 최근 보도한 ‘개봉박두, 삼성 워싱턴 모뉴먼트’라는 제목의 기사. 슬레이트는 미국 주요 대학과 도서관, 경기장의 이름이 해외 기업들에 팔려나가는 주요 ‘수출 품목’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 슬레이트
대학-도서관 등 자금난 겪는 기관들 ‘이름 판매’ 성행

“개봉박두, 삼성 워싱턴 모뉴먼트(기념비).”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소유한 웹 매거진 슬레이트가 최근 미국의 주요 기념물과 시설들의 이름이 전 세계 부자와 기업들에 팔려나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면서 붙인 제목이다.

실제 삼성이 워싱턴 모뉴먼트에 이름을 붙이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국 수도 워싱턴의 상징인 워싱턴 모뉴먼트와 세계 일류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삼성의 위상을 절묘하게 조합시켜 미국 내 무분별한 ‘이름 판매’에 경계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이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 그룹의 창업자인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은 올해 3월 뉴욕 공립도서관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대가로 1억 달러를 기부했다.

영국계 바클레이 은행도 최근 프로농구팀 뉴저지 네츠에 4억 달러를 지불했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 씨가 설계한 뉴욕 브루클린의 농구경기장에 이 은행의 이름을 넣는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그랬던 것처럼 철강업계 세계 2위인 브라질의 베일사는 학계에 이름을 남겼다. 베일사는 4월 말 컬럼비아대에 ‘지속 가능한 국제 투자를 위한 베일-컬럼비아 센터’를 세웠다고 발표했다.

명성과 지위에 목말라하는 세계적인 기업과 부호들이 미국의 명소나 기관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 기꺼이 거액을 기부하는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다만 최근 경기침체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미국 대학과 도서관, 스포츠팀 사이에서 이런 ‘이름 판매’가 부쩍 많아지면서 미국 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각종 명소와 기관을 외국 기업과 부호들의 광고판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슬레이트는 “이름은 그야말로 오랜 역사의 흔적이고 상징이다. 오랜 역사를 지우고 판매한 이름은 자칫 오명으로 남을 수도 있다”며 과거 무분별한 ‘이름 판매’ 사례로 아메리칸대의 경우를 들었다.

아메리칸대는 1980년대 초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호 아드난 카쇼기 씨에게서 500만 달러의 지원을 약속받고 ‘아드난 카쇼기 스포츠-컨보케이션 센터’를 건립했다. 그러나 카쇼기 씨가 이란-콘트라 무기 밀매 스캔들에 연루된 것이 드러나고 약속한 기부금이 입금되지 않자 한바탕 홍역을 치른 뒤 그의 이름을 삭제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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