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금융가의 코리아데스크]<상>왜 ‘Sell Korea’인가

  • 입력 2008년 4월 21일 02시 54분


《최근 2년 3개월간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서 무려 518억2800만 달러(약 51조8280억 원)를 팔아치웠다.

반면 같은 기간 대만 증시에서는 211억8600만 달러, 인도 증시에서는 221억4600만 달러를 사들였다.

‘이제 외국인은 한국 증시를 외면하는 걸까?’

기자는 이 물음의 답을 구하기 위해 8일부터 나흘간 홍콩에서 외국인 투자가 10여 명을 만났다. 이들은 세계적 자산운용사들의 ‘아시아 데스크’로 이들의 판단에 따라 해당 펀드에서 한국물의 편입 비중이 달라진다.

한국 경제 및 증시 전반(상), 그리고 개별 업종 및 종목(하)에 대한 이들의 시각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 한국증시에 대한 입장은 여전히 ‘비중 확대’

“세계적인 유동성 위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이 들어오자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미 상당한 투자수익을 거둔 한국에서 주식을 팔았을 뿐 한국 경제에 구조적 문제(structure weakness)가 있어서 판 건 아니다. 한국 증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여전히 ‘비중 확대’다.”

8일 홍콩 센트럴 ‘차터 하우스’ 사무실에서 만난 사이먼 루돌프 프랭클린템플턴인베스트먼트 아시아 법인 수석부사장 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한국 증시를 낙관적으로 봤다. 한국은 대만과 함께 아시아 신흥국 증시에서 시장 규모가 크고 거래량이 많아 현금자산을 확보할 수 있는 주요 시장으로 인식된다.

지난해 10월∼올해 2월 코스피시장의 외국인 국적별 순매도 현황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국적의 외국인 투자가들이 각각 13조7263억 원, 7조1041억 원을 팔아치워 국적별 1, 2위를 차지했다.

이건표 전 코메르츠은행 홍콩 대표는 “현재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미국과 유럽의 대형 뮤추얼 펀드”라며 “경기 침체로 해당국 투자자들의 펀드 환매가 이어지자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시장에서 돈을 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미국 침체의 영향 가장 많이 받아

홍콩 센트럴 지역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자산운용사와 헤지펀드는 지구 반대편 미국 소식에 실시간 귀를 기울이며 대책을 모색하느라 바쁜 분위기였다.

이들은 현재 한국 주식의 가격이 싸 매력적이라고 보면서도 올해 말까지는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계 대형 자산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한국은 장기적으로 꾸준한 오름세를 이어나갈 ‘강세장’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자산운용사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10여 개 국가에 투자하는 펀드에서 한국 비중을 2년 전부터 점차 낮춰왔다. 그는 “미국 위기가 해결되려면 한참 더 남았다”며 “미국의 실물경기가 본격적으로 나빠지면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 시장에 연간 4000억∼1조 원을 투자하는 헤지펀드 PMA캐피털매니지먼트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파르하트 말리크 씨는 “내가 만난 선진국의 큰손 가운데는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 증시에만 투자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한국은 우리가 투자하는 아시아 전 국가 가운데 항상 투자액 기준 상위 5위 안에 든다”고 말했다.

○ 외국인 관심, 한국에서 대만으로 이동

하지만 ‘한국 증시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올해 들어 중국과 대만의 정치적 긴장이 완화되면서 외국인의 관심이 한국에서 대만으로 쏠리고 있다. 헤지펀드 트라이브리지의 김유진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더욱 좋아지면 대만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 전인 2005년과 2006년에도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꾸준히 팔았다. 중국, 인도 같은 고성장 국가로 외국인 투자가들의 관심이 옮겨졌기 때문이다.

사이먼 루돌프 수석부사장은 “인도와 중국은 한국보다 기업 성장 잠재력이 커 마치 자석처럼 투자자들을 끌어당겼다”고 말했다. 템플턴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이머징 시장 펀드의 지역별 투입 비중은 브라질(19%) 중국(16%) 러시아(13%) 터키(8%) 한국(7%) 순이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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