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부업체들 ‘봄속의 겨울’

  • 입력 2008년 4월 4일 03시 00분


이자제한법 따라 존립 위기에

한국 등 해외진출 가속화 전망

일본계 대부업체들은 한국 대부업 시장의 4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대부업체들의 매출액과 수익성 순위를 보면 일본계 일색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시장을 휩쓸고 있는 일본계 대부업체들은 본국에서는 ‘마이너’에 속한다. 한국 진출설이 끊이지 않는 아이후루 등 대형 대부업체가 본격 상륙한다면 규모가 영세한 한국 대부업체들은 초토화될 가능성이 크다.

도대체 일본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일본 대부업체들이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일까.

일본의 대부업체들은 1980년대 중반 그 수가 약 5만 개에 육박할 정도로 성업을 누렸다. 이후 감소 추세로 돌아섰지만 2년 전까지도 대부업계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일본은행과 금융청에 따르면 은행권의 개인대출(주택담보대출 제외) 잔액은 1992년 3월 20조3700억 엔에서 2006년 3월 8조6800억 엔으로 줄었다.

반면 무담보 대부업자들의 대출 잔액은 1992년 3월 4조1300억 엔에서 2005년 3월 11조6700억 엔으로 늘었다. 서민들에게는 대부업체들이 은행보다 훨씬 친숙한 존재인 셈이다.

업체들의 규모도 상상을 뛰어넘는다. 최대 업체인 아이후루의 경우 일본 전역에 지점 1015개를 두고 있고 직원 수도 5233명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일본 대부업계의 사정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중소업체들의 도산이 줄을 이으면서 1998년까지 3만 개가 넘던 대부업체 수는 2008년 1월 현재 9819개로 감소했다. 지난해 3월과 비교해도 17%나 줄어들었다.

대형 대부업체들의 영업실적도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아이후루 아코무 다케후지 프로미스 등 4대 업체의 1월 말 현재 대출 잔액은 4조9000억 엔으로 1년 전보다 14% 감소했다. 전성기였던 2003년보다 무려 1조 엔 이상이 줄었다.

일본 대부업계가 이처럼 된서리를 맞게 된 데는 2006년 1월 최고재판소의 판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의 이자제한법은 대부업의 상한금리를 대출금액에 따라 연 15∼20%로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법률인 출자법은 상한금리를 연 29.2%로 규정하고 있다.

대부업체들은 이 중 자신들에게 유리한 출자법의 상한금리를 적용해 왔다.

하지만 최고재판소가 이자제한법의 상한금리를 넘어선 이자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려 대부업체들은 과다하게 받은 금리를 돌려줘야 하는 처지가 됐다.

최고재판소의 판결은 대부업에 대한 규제 강화 논란으로 이어졌다.

은행금리가 0%에 가까운 일본에서 대부업체들이 서민들에게 두 자릿수의 고리(高利)를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규제 강화론자들의 주장.

반면 반대론자들은 대부업 규제를 강화하면 야쿠자(일본의 조직폭력단)가 연계된 ‘지하금융’이 창궐하게 된다고 맞섰다.

상반되는 두 주장 중 일본 정부가 선택한 것은 규제 강화론이었다.

일본 정부는 대부업 규제 강화책을 이미 2차례에 걸쳐 단행한 데 이어 2010년 10월까지 2차례 더 시행할 예정이다.

대부업체들은 규제 강화 분위기 속에서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업체들이 상한금리를 자율적으로 연 18%까지 낮추고 대출 심사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 내 영업환경이 점점 악화되고 있어 일본 대부업체가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한국과 일본의 대부업 비교
구분한국일본
등록 대부업체 수1만7000개9819개
대부업 시장 규모약 18조 원약 130조 원
대부업 이용 고객 수330만 명1400만 명
자료: 한국 금융감독원, 일본 금융청 등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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