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위기에 우량채권도 거래 뚝…월가에 돈이 안돈다

  • 입력 2008년 3월 18일 02시 58분


美 5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헐값 매각

《“‘제2의 베어스턴스’는 어디인가.”

미국 5위의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헐값에 ‘JP모건체이스’에 팔렸지만 세계 금융시장은 진정되지 않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누가 다음 희생양이 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본격화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미국 금융시장의 신뢰 붕괴 위기로 옮겨 붙을 전조를 보이고 있다. 1998년 동아시아 위기에서 알 수 있듯 신뢰가 흔들리면 금융 시스템 자체가 허물어진다. 미국에서는 과감한 공적자금 투입으로 하루빨리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시 “강도 높은 조치… 사태 충분히 수습 가능”

FRB 유동성 공급 나서… 공적자금 투입 논란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헨리 폴슨 재무장관 등 경제팀과 회의를 마친 뒤 “우리는 강도 높은 조치를 취했으며 앞으로도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다. 사태를 충분히 수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날 2월 산업생산이 전월 대비 0.5%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월가 전문가 예상치(0.1% 증가)보다 낮은 수준이다.

○ 서로를 못 믿는 美 금융회사들

베어스턴스는 산하 헤지펀드가 지난해 8월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 투자로 파산하는 등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등과 함께 모기지 관련 채권 투자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이 때문에 유동성 위기 소문이 불거졌고, 헤지펀드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300억 달러 회수, 은행들의 거래 중단 등이 이어지면서 부도 직전까지 밀렸다.

리먼브러더스는 베어스턴스 쇼크를 접하고 지레 “40여 개 금융회사로부터 20억 달러의 신용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한국금융연구원 이규복 연구위원은 “미국 금융회사들 간에 상대방의 자산 건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져 금융거래 자체를 기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브프라임은 물론 우량 채권의 거래마저 끊기고 가격이 형성되지 못할 정도로 시장이 기능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파장은 우량 모기지 채권(Alt-A)과 미국 주정부 발행 채권(ARS)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올해 들어 Alt-A급 모기지 채권의 가치가 15%가량 떨어졌다”며 “비교적 건실한 것으로 알려졌던 상업용 모기지 채권도 가산금리가 급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美 정부 대책 마련 부심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16일 밤 재할인율을 전격 인하하는 등 유동성 공급에 나선 것도 금융시장에 ‘신뢰’를 공급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유동성 주입만으로는 금융시장의 마비를 풀 수 없다는 전망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삼성증권 리스크관리팀 권경혁 전무는 “미국에서 정부가 1980년대 말 발생한 ‘저축대부조합(S&L) 부실 사태’를 해결한 것처럼 공적자금으로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을 사들여 시장 불안을 일거에 해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서브프라임의 발단은 모기지 이용자들의 지급 불능에 있는 만큼 이를 지원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해 바니 프랭크 하원 금융위원장은 “금리가 올라 이자를 갚지 못하는 대출자를 위해 30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마련해 지급 보증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처럼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은 방만하게 경영한 은행과 무리하게 집을 산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를 용인하는 것이라는 반론도 거세다.

한국은행 구미경제팀 권성태 팀장은 “미국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어 금리 인하뿐 아니라 주택시장 안정화 정책을 비롯한 특단의 대책을 곧 내놓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미국은 물론 한국 금융시장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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