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기억을 만드는 것 ‘전쟁 박물관’

  • 입력 2008년 2월 21일 17시 27분


병사들의 동상이 입구에 서 있는 한국의 전쟁 기념관=서울에서 후쿠다(福田) 가 촬영
병사들의 동상이 입구에 서 있는 한국의 전쟁 기념관=서울에서 후쿠다(福田) 가 촬영
제7장 아시아• 태평양전쟁과 국공 내전(国共内戦)(下)

기억을 만드는 것 - 전쟁 박물관

전쟁사와 어떻게 마주 할 것인가

과거 사건들을 어떤 형태로 기억에 남길 것인가. 박물관이라는 장치가 짊어진 영원한 과제는 전쟁이 주제가 되면 한층 더 어려워진다.

●‘공적인 기억’이 아직 없는 일본

구슬을 꿰맞춘 것처럼 계속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근대 일본은 1945년 패전을 맞을 때까지 끊임없이 전쟁을 해 왔다. 1931년 만주 사변을 시작으로 ‘15년 전쟁’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전쟁들을, 통사로서 전시하는 국립 박물관이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유일한 국립 역사 박물관은 지바(千葉)현 사쿠라(佐倉)시에 있는 국립 역사 민속 박물관이다. 그러나 전시는 고대에서부터 1920년대까지로, 그 이후를 어떻게 전시할 것인가가 1983년 개관 이래의 현안이다. 일본의 정치가 이웃 여러 나라와의 역사 문제로 흔들려 온 것과도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원래 박물관 개관 시기에 일본은 역사 교과서 문제로, 중한(中韓) 양국과 심각한 상황에 있었다. 그 후에도, 아시아 태평양 전쟁의 의미를 둘러싸고 일본 내 정계에서도 대외적으로도 마찰이 끊이질 않았으므로, 역사 민속 박물관이 수수방관한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국립 박물관이기 때문에 박물관의 전시는 곧 일본의 ‘정사(正史)’라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특별전의 시도는 있었다. 작년에는“사쿠라 연대(佐倉連隊)로 보는 전쟁 시대”라는 전시가 열렸다. 그 지역에 있었던 부대의 이야기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역사자료를 제공해 주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연대사(連隊史)라는 설정은 전쟁의 전체상을 보여주지 못 했다는 한계도 드러냈다. 연대가 참가한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으로부터 태평양 전쟁 말기의 필리핀 레이테섬에 이르기까지, 그렇다면 ‘왜’이런 전쟁이 일어났는가라는 전체 상황에 대한 의문 그대로 남게 되었다.

국립 시설로는 또 한군데 도쿄(東京) 구단(九段)에 쇼와관(昭和館)이 있다. ‘전시 중과 전후의 어려웠던 국민 생활을 후세대에 전한다’라는 목적으로, 당시의 생활을 전하는 역사 자료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흥미로운 전시품들이지만, 그러한 생활을 초래한, 즉 전쟁 그 자체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다루지 않고 있다.

역사 민속 박물관도 쇼와관도, 그 전쟁에 대해 아직도 일본이 ‘공적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갖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자치단체나 민간 역사 관련 시설에서는 다양한 시도도 하지만, 국립이 되면 누구 봐도 불만을 이야기 하지 않을 ‘후방의 노고’에 안주할 수밖에 없다.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유취관(遊就館)은 훌륭한 전쟁 박물관이지만, 그 전쟁은 일본의 자존 자위를 위해서였다는 주장을 관철하고 있다. 지금은 종교법인의 부속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는 일본의 전쟁관을 대표하는 곳이라고 보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이 곳을 대신할 만한 국가 시설을 갖지 않고 있다.

洑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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