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공종식]과속운전 브레이크 ‘벌금의 힘’

  • 입력 2007년 11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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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자동차를 몰고 뉴욕 맨해튼에 갈 일이 있었다. 도로는 시속 약 80km 구간이었다. 규정 속도에 맞춰 1차로로 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차가 바짝 따라왔다.

‘속도를 내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속도를 올리지 않고 버텼더니 헤드라이트까지 켜 대며 비킬 것을 요구했다. 뉴욕 일대는 미국 내 다른 지역에 비해 운전 습관이 거칠기로 악명이 높다. 결국 속도를 내서 오른쪽 차로로 옮겼다.

그런데 바로 경찰차가 따라왔다. “뒤에서 차가 따라붙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경찰차 앞에서 차로를 바꾸기 위해 순간적으로 과속한 것이 문제가 됐다.

벌금은 105달러(약 9만5000원). 미국 생활 2년여 만에 처음 과속 스티커를 발부받은 것이다. 고장 난 한쪽 브레이크등을 수리하지 않았다가 ‘자동차 관리 소홀’로 65달러를 납부한 것이 고작 1주일 전이었기에 속은 더욱 쓰렸다. 당시에도 “브레이크등이 고장 난 줄 몰랐다”고 설명했지만 경찰관은 “자동차 관리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다”며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과속 스티커 벌금 납부를 위해 법원에 전화를 하자 좋지 않은 소식이 하나 더 기다리고 있었다. 법원 여직원은 “과속 스티커에는 벌점이 부과되고 벌점 부과 시엔 자동차 보험료가 크게 오른다”며 “재판을 통해 판사에게 벌점을 없애 달라고 요청하는 대신 추가 벌금을 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이번에 받은 벌점 3점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돈은 400달러에 법정사용료 40달러를 포함해 모두 440달러라고 ‘공정 가격’까지 친절하게 알려줬다. 순간적으로 속이 끓어올랐다. 지방자치단체가 자동차 과속 스티커 발부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선 교통위반 범칙금이 지자체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교통위반 스티커 발부 건수와 경기, 지자체 재정 여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논문이 나올 정도다.

보험료 예상 증가액을 알아본 뒤 벌금 105달러만 내고 벌점은 없애지 않기로 했다. 미국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은 보험료 인상액이 더 크기 때문에 대체로 돈을 내고 벌점을 없앤다는 말을 뒤늦게 들었다. 과속 스티커 한 장에 따른 실질적인 비용이 500달러(약 45만 원)가 훨씬 넘는다는 이야기다.

일주일쯤 지나자 갑자기 변호사들이 편지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과속 스티커를 발부받은 사실을 용케 알아내 “벌점이 늘어나면 운전면허가 취소될 수도 있다”며 잔뜩 겁을 준 뒤 자신들이 재판을 맡겠다는 내용이었다. 모두 5통이 도착했다. 미국에 변호사가 많다는 이야기를 실감했다.

어찌됐건 요즘 기자는 운전할 때 극도로 조심한다. 한 장의 과속 스티커 발부에 따른 범칙금이 엄청나다는 점을 뒤늦게 실감했기 때문이다. 뒤에서 아무리 ‘속도를 내라’며 따라붙어도 눈도 끔쩍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브레이크등을 점검하는 것도 습관이 됐다.

미국은 이처럼 ‘돈’과 ‘감시’를 통해 교통안전을 확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쿨버스가 승하차를 위해 정지하면 반대편 차로의 차량까지 무조건 정지해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기다 적발되면 수백 달러의 벌금과 함께 별도의 교통안전 교육까지 받아야 한다.

공사구간에서 과속으로 적발되면 범칙금이 두 배에 이른다. 많은 미국인이 주택가 근처 시속 40km 구간을 꼬박꼬박 준수하는 것도 40km 구간이 경찰의 단골 단속 구간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돈의 힘’은 정말 무섭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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