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무너지는 ‘하얀거탑’

  • 입력 2007년 10월 2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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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내부의 암투 등을 다뤘던 드라마 ‘하얀거탑’은 일본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 ‘하얀거탑(白い巨塔)’은 사회적으로 막강한 권위를 지닌 일본 의료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요즘 일본 의료계의 실상은 다르다. 일본 종합정보지 ‘더 팩타’ 최신호에 따르면 최근 일본에선 병원들이 경영난으로 줄줄이 도산하고 ‘환자 쟁탈전’을 벌이는 등 의료계 몰락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후생노동성 관료를 지낸 하세가와 도시히코(長谷川敏彦) 일본의대 교수는 “앞으로 3∼5년 내에 병원업계는 ‘피바다(血の海)’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문 닫는 병원 급증, ‘의료 붕괴론’ 대두=신용조사회사 데이코쿠(帝國) 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일본 의료기관의 도산은 총 33건으로 2000년대 들어 연간 최고치였던 2004년(32건)을 일찌감치 넘어섰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1990년 1만96곳이었던 전국의 병원도 올해 8883곳(5월 말 기준)으로 줄었다.

병원의 잇따른 도산은 수입 감소, 방만한 경영, 병원의 난립 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더 팩타’는 지적했다.

병원 수입 감소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정부의 지속적인 진료비 인하 정책. 병원업계에 ‘수익 감소→의료진 사직→환자 이탈’의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오사카의 다다오카(忠岡)공립병원의 연간 총수입은 2002년 12억5800만 엔(약 100억5100만 원)에서 2005년 6억4100만 엔(약 51억2200만 원)으로 반 토막 났다.

병원 경영상태가 악화되면서 의사들이 도쿄 주변 수도권이나 ‘돈 되는’ 특정 진료과목에 몰리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방 병원은 의사가 부족하고 종합병원에서는 산부인과나 소아과 등을 없애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명문병원이나 지방 대형병원까지 도산할 정도여서 경제 대국 일본에서 기본적인 의료복지 혜택마저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더 팩타’는 경고했다.

▽병원 난립이 가장 큰 문제=일본 공립병원 982곳 중 626곳이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야마가타(山形) 현에선 현립병원과 시립병원이 치열한 ‘환자 쟁탈전’을 벌이다 둘 다 만성적자로 위기를 맞이했다. 비교적 경영상황이 좋다는 국립대학병원들도 환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마케팅을 강화해 중소 병원의 타격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병원 경영난의 가장 큰 요인으로 과포화 상태에 이른 병원 수를 꼽는다. 따라서 병원 통폐합과 대형 인수합병(M&A) 등이 해결책이라고 의료계는 진단하고 있다.

일부 국공립병원은 의료 서비스를 제외한 경영 관리 등의 분야를 민간 기업에 넘기거나 독립 법인화와 민영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기도 한다.

하세가와 교수는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지방자치단체 병원, 국립대학병원, 개인 중소병원 순으로 도산 도미노가 일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러한 혼란은 결국 의료 서비스의 질적 저하로 이어져 환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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