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력 상실… 버티기 한계…불명예 퇴진

  • 입력 2007년 9월 13일 03시 02분


코멘트
《12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전격 사의 표명으로 일본 열도가 충격에 빠졌다. 일본 정계를 비롯해 국민도 당혹감을 넘어 “이해할 수 없다” “무책임의 극치”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 “최악의 타이밍” 일본 정계 당혹

아베 총리는 불과 이틀 전인 10일 국회에서 스스로 “개혁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하는 ‘소신표명 연설’을 했고 12일 오후 열릴 중의원 본회의에서는 그의 개혁 소신에 대한 각 당 대표의 질문이 예정돼 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자민당 내에서조차 “참의원 선거에 패배했을 때 그만뒀다면 이해가 가지만, 왜 지금인가”라며 곤혹스러워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사임 이유에 대해 “인도양에서 해상자위대의 급유 활동 지속을 위한 국면 전환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21분의 회견 중 ‘국면 전환’이란 표현을 7번이나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계에서는 심지어 “정치적 자폭테러”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총리가) 자살할 장소를 찾아 헤매다가 테러특조법을 그 장소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그만둔다고 해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후까지 아베 총리는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지금 시점은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하고도 내외의 퇴진 압력을 물리친 뒤 제2기 내각을 출범시킨 직후여서 ‘최악의 타이밍’이라는 평을 피할 수 없다. 지난달 27일 출범한 제2기 아베 내각은 역대 두 번째로 단명한 내각이 됐다.

○ 사퇴의 불씨가 된 테러특조법

아베 총리를 사퇴로 몰고 간 테러특조법 처리 문제는 차기 총리가 누가 되든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는 아베 총리의 사의 표명 발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테러특조법에 대해 “자민당 총재가 바뀐다고 해서 우리 생각이 바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후임 총리가 누구든지 간에 타협이 어려울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테러특조법은 일본 해상자위대가 인도양에서 미군 함정에 급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법으로 11월 1일 기한이 만료된다. 민주당 등 야당이 이에 반대함으로써 연장 법안의 참의원 통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돼 있다.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급유 활동을 지속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 후임 선출은…

날벼락을 맞은 셈인 자민당으로서는 가장 시급한 것이 후임 총리 선출.

자민당 내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대로라면 19일이면 차기 일본 총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민당은 10일부터 임시국회가 시작돼 정치적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19일 신임 총재 선거를 치르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 중이다. 다만 당내에서는 “당원의 목소리를 더 반영해야 한다”며 늦출 것을 주장하는 의견도 강해 13일 양원 의원 총회에서 정식 결정할 방침이다. 자민당은 가급적 이달 25일로 예정된 유엔총회에 신임 총리가 참석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아베 총리는 새 총재가 선출될 때까지는 총리 직을 그대로 수행한다.

○ ‘총선거 준비론’ 솔솔

장기적으로는 민주당이 주장해 온 ‘중의원 해산, 총선거 조기 실시’ 여부가 향후 일본 정국의 최대 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민주당 의원은 이날 “(아베 총리가 이틀 전) 소신 표명 전에 그만둬야 했다. 여기까지 왔다면 중의원을 해산하고 민의를 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오자와 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의원 선거는 언제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국회의원들은 준비해야 한다”고 말해 향후 정국의 파란을 예고했다.

자민당 등 여당으로서는 당내 분위기를 추스르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총선거는 최대한 늦추고 싶은 사안. 반면 민주당 등 야당은 가급적 빨리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로 몰아가려는 태세다.

이에 따라 민주당이 언제 어떤 시점을 잡아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압박하느냐가 향후 정국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