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의 ‘화려한 쇼맨십’…체육관부지 잡초 무성·교통체증 심각

  • 입력 2007년 7월 3일 16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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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후보지 선정을 사흘 앞둔 1일, 소치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25km 떨어진 아들러공항 대합실 입구. 무면허 택시 영업을 하는 기사들이 몰려나와 장거리 여행에 지친 관광객들에게 거친 말투로 말을 걸었다.

"어이, 어디 가냐? 소치 시내까지 60달러(약 5만6000원) 어때?"

대꾸를 하지 않는 관광객들에게도 기사 서너 명씩이 길을 가로 막고 "더 싸게 해 주겠다"며 집요하게 달라붙곤 했다. 순찰을 돌던 지역 경찰 두 명도 이런 장면을 못 본 체했다.

소치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공항 관광 안내소를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짐을 끌고 대합실로 다시 들어가 항공사 제복을 입은 직원에게서 위치를 알아냈다.

관광안내소로 가는 길에 호객꾼 한 명이 달라붙었다. 가격은 50달러로 내려가 있었다. 옆에 있던 그의 동료는 카프카스 억양의 러시아 어로 "30달러를 부르면 갈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마라"고 말했다.

공항에 도착한 지 40분이 지나 만난 안내소 직원은 "노란색 승합차를 타면 25루블(890원)이면 시내로 들어갈 수 있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노란색 승합차라곤 보이지 않았다.

모스크바에서 소치로 오는 항공기 내에서 만난 소치 주민 아르춈 이바노비치(49) 씨는 "휴가철에 찾아오는 외국인에게 뒤집어씌우는 차별 요금, 낙후된 숙박 시설과 행정 서비스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외국인이 러시아를 좀 안다 싶으면 오히려 더 손해를 볼 수 있으니 모른 척하고 현지인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것이 편할 때가 많다"고 충고했다.

이날 소치 행 항공기를 탄 승객들은 평소보다 최고 10배가 넘는 요금을 물어야만 했다. 이륙마저 30분 지연됐으나 러시아 승객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 승객은 저가항공권 선전에 속는 현지인은 없을 것이라며 "이 정도 지연은 항공사에 고마워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아들러 공항은 활주로가 짧고 기상 악화가 잦아 한꺼번에 많은 승객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요금 인상이나 지연 출발은 흔한 일이라는 설명이었다.

러시아 생활 3년째인 기자도 아들러 공항에서 소치 시내 외국인이 운영하는 R호텔까지 가는 데 4시간이 걸렸다. 소치 시내에서 인터넷 모뎀이 설치됐다고 선전하는 유일한 호텔이었다. 7평 남짓한 객실 숙박비가 하루 8100루블(29만5000원)이었지만 기사를 전송하기 위해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밤 11시경 객실에서 짐을 정리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호텔 안내인은 "손님의 거주등록기간이 잘못됐으니 프론트로 내려오라"고 했다. 내려가 보니 이 안내인이 러시아가 최근 시행하기 시작한 외국인 거주등록제도에 익숙하지 않아 유효기간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동계올림픽 후보지로 강원 평창과 경쟁하는 러시아 도시 소치. 그러나 그 현실은 남미 과테말라에서 러시아 올림픽위원회가 보여주는 화려한 쇼나 장밋빛 비전과는 달랐다. 외국인이 처음 소치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모스크바=정위용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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