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역사인가]대만, 높아지는 대만인 의식

  • 입력 2007년 6월 8일 17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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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대만의 주권을 계승했다고 강조하지만, 대만에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만을 일본에 할양한 것과 1947년 중화민국 정부에 의한 대만인 학살(2•28사건)에 대해서 중국 정부는 대만인에게 정식 사죄도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담당하는 대만 행정원(내각) 대륙 위원회의 젊은 관료는 단번에 이렇게 말했다.

중국과의 대립관계는 이러한 과거사의 분노에서 기인한다. 더욱이 새로운 정치적 움직임이 새삼 역사에 관심을 향하게 한다.

2000년에 국민당에서 정권교체 된 민진당은 대만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대만 본토화’와, 중국과의 차이를 강조하는 ‘탈 중국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만 본연의 정체성을 생각할 때, 사람들은 ‘자신은 대만인인가, 중국인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때, 역사가 시야에 들어 오는 것이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대만인이라는 대답이 늘고, 중국인이라는 대답은 줄어 들고 있다. 작년 12월의 정치대학 선거연구센터의 조사에서는 대만인이 44%, 양쪽 모두가 45%에 비해, 중국인이라는 대답은 6%였다. 대만인 의식의 고양인 것이다.

리덩후인(李登輝)전 총통은 1999년에 중국과의 관계를 “특수한 나라와 나라와의 관계”라고 하는 “2 국론”을 제기하였다. 천수이볜(陳水扁)총통은 2002년에 “일변 일국론”(一辺一国論)으로, 중국과 대만은 각각 다른 나라라고 주장했다. 모두 중국의 맹반발을 불러왔다.

게다가, 대만 독립파는 “중화 민국”의 국호를 “대만국”, “대만 공화국”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하는 ‘정명(이름을 바로한다)’운동을 전개하여, “대만”이라는 호칭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당국도 이에 응하여, 올 2월에는 “중화우정”, “중국석유” 등의 공영 기업명을 “대만우정”, “대만석유”로 바꾸었다.

명칭의 재검토, 대만이라는 아이덴티티의 재검토는 역사의 재검토로 연결된다. 역사의 재검토는 역사 교육의 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민당 정권 시대는 언급조차 금기였던 2•28 탄압 사건에 대해서도,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28 사건은 대만 주권의 근원이다. 국민당에 의해서 왜곡되었던 사건의 진상을 밝히자”라고 하는 것은, 2•28사건 기념기금회의 양젠롱(楊振隆)대표이다. 당국의 지원을 얻은 기금회는 2009년 개관을 목표로 “2•28국가기념관”을 건설 중이다.

대만의 장래를 결정하는 내년 봄의 총통 선거, 대만 독립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중국과의 관계 등, 대만 정치에서 “역사”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다무라 히로쯔구 田村宏嗣)

:: 2•28사건 ::

1947년, 중화민국 통치 하의 대만에서 일어난 주민과 정부의 충돌 사건이다. 2월 28일, 암거래 담배 단속에 항의하는 주민에게 군이 발포하여, 전 지역으로 항의가 확산되었다. 정부는 탄압으로 돌아 섰다. 그로 인한 사망자는 1•8만~2•8만명으로 추정된다. 대만인이 국민당과 대륙에서 온 중국인에게 반발하게 된 발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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