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주먹으로 강경 쿠데타군과 맞서 싸우고, 의회를 공격한 무장 세력을 탱크로 진압하던 그는 타고난 승부사였다. 옛 소련의 붕괴, 러시아의 탄생, 세계질서의 재편 등 20세기 후반 세계사의 한복판에 그는 서 있었다. 러시아 민주화에 한 획을 그었던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삶은 그의 말처럼 불꽃같았다.
▽운명의 전환점=그의 운명을 바꾼 분수령은 1991년 8월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였다.
8월 19일 군부와 국가보안위원회(KGB)가 주축이 된 보수파는 흑해 연안에서 휴가 중이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연금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옐친 전 대통령은 러시아최고회의 청사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쿠데타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청사 주변에 인간 사슬을 만들어 ‘옐친 지키기’에 나섰다. 21일 아침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청사 밖으로 나온 옐친 전 대통령은 쿠데타군의 탱크 위에 올라탔다. CNN 등 전 세계 언론 앞에서 그는 쿠데타의 무효를 선언했다. 장교들은 발포 명령을 거부하고 옐친 전 대통령에게 복종을 선언했다. 역사를 되돌리려는 소련 보수파의 기도가 3일 천하로 돌아가고 옐친 전 대통령이 러시아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시대도 이때 막을 내렸다.
푸틴 대통령은 옐친 전 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다하며 대권을 물려준 ‘은혜’를 잊지 않았다. 옐친 전 대통령은 올해 2월 흑해 연안 동계올림픽 후보지인 소치를 방문했을 때 수십 명의 크렘린 경호원을 수행하고 차량도 제공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지난해 2월 1일 옐친 전 대통령의 75세 생일에는 크렘린에서 성대한 축하 연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옐친에 대한 평가 엇갈려=옐친 전 대통령은 소련의 붕괴를 촉진하고 러시아에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러시아의 ‘첫 포스트 공산주의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공산당의 일당 독재에 저항하는 것으로 서방 세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대국 러시아를 외교적 발언권이 약한 소국으로 전락시켰다는 비난도 듣는다. 대통령 재직 때 외환위기를 몰고 와 국가를 부채의 늪에 빠뜨렸다. 또한 무리한 체첸 전쟁으로 수차례의 ‘보복 테러’를 불러오기도 했다.
러시아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하기도 했지만 소련이 해체된 것도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였다. 대통령 재직 때 외교 현장에서 음주와 잦은 말실수, ‘병상 정치’로 구설에 올라 지도자의 품격을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의 가장 훌륭한 업적이 푸틴 대통령을 후계자로 선택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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