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공대 '침묵의 시간'…기도와 묵념

  • 입력 2007년 4월 23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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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난사 참극이 발생한지 정확히 1주일이 흐른 23일 오전 7시 15분.

조승희가 1차 총격으로 학생 2명을 살해한 앰블러 존슨 홀 기숙사 앞에 수백 명의 학생이 모여들었다. 한 학생이 무고하게 숨진 에밀리 힐셔와 라이언 클라크를 위해 대표 기도를 시작했다. 모두들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비극적 사건으로 폐쇄됐던 강의실이 다시 열리는 첫날은 이렇게 기도로 시작됐다. 1주일 전 서둘러 챙겼던 여행가방을 들고 전날까지 기숙사로 돌아온 학생들은 예전처럼 아침부터 강의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모든 것이 이전과 똑같지는 않았다. 대학원생 데이비드 앤더슨 군은 "이번 주엔 아무래도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당국은 22일 학생들의 후유증을 고려한 학점관리 방침을 발표했다. 이번학기 수강을 중단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5월 초인 학기말까지 학업에 복귀하지 않아도 중간고사 성적으로만 성적을 평가한다는 내용이었다.

대학당국은 이날 "정상적인 수업진행을 위해 언론의 강의실 취재를 제한한다"고 밝혔다. 22일에는 일주일간 운영해 온 프레스센터를 폐쇄했다.

오전 9시 45분. 2차 총격으로 30명이 살해된 그 시각에 맞춰 대학전체는 '침묵의 시간'을 갖고 기도와 묵념을 올렸다.

이어 대학본부의 종탑에서는 무고한 희생자 32명의 넋을 기리는 종소리가 느린 속도로 32회 울렸다. 파란 잔디가 깔린 대운동장(드릴 필드) 곁에서는 하얀 풍선 32개가 하늘로 띄워졌다. 곧이어 학교의 상징색인 오렌지와 자주색 풍선 수천 개가 한꺼번에 하늘로 떠올랐다.

23일 교내분위기도 지난 며칠간과 다르지 않았다.

추도행사나 영결식이 열릴 때마다 학생들은 소리 없는 눈물로 슬픔을 달랬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선 'Let's go Hokie(호키는 칠면조와 비슷하게 생긴 상상의 새로 이 대학의 마스코트)'라는 구호로 단합을 다졌다.

19일 추모게시판 앞에서 만난 한 교수는 시끌벅적한 추도문화를 어색해 하는 동양문화권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는 "미국인은 아마 혼자서 슬픔과 고통을 이길 수 없다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며 일체감을 갖는 것이 '미국식 슬픔 극복법' 아니겠느냐"고 했다.

며칠 동안 대학구내서 마주친 풍경도 다양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시끌시끌한 추도와 오열 없는 눈물, 살인범 조승희의 넋도 용서하고 품에 안아야 한다는 용서의 분위기와 함께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자는 뜻으로 열린 교내 소풍, 낚싯대와 골프백을 매고 일요일 오후를 보내는 학생까지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단지 합동장례식이나 정치인의 현장방문처럼 허식(虛飾)으로 비춰질 요소는 자연스럽게 배제돼는 분위기였다.

한편 미국 주요언론은 조승희 가족을 통해 한국이민자의 삶을 조명하는 기사를 잇따라 실었다.

뉴욕타임스는 "조승희의 가족이 살던 버지니아 주 센터빌의 한인 사회는 자식의 밝은 미래를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시하며, 높은 대학입학시험 점수를 위한 교습학원이 많이 들어선 곳"이라고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도 이날 '명랑한 딸, 시무룩한 아들'이란 제목의 1면 기사에서 "한 가족 안에 프린스턴대에 진학한 누나, 참극을 일으킨 동생이 모두 있었다"며 "교육과 성공을 강조하면서 '성공 아니면 실패'의 잣대로 보는 아시아 이민사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화보]버지니아 캠퍼스 '조승희' 애도 추도석 마련

블랙스버그(버지니아주)=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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