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증-망상 뒤섞여… 증오범죄 아닌 광란”

  • 입력 2007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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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은 증오범죄(hate crime)인가, 정신병자의 광기인가?

범인 조승희는 미국 NBC 방송에 보낸 비디오와 글을 통해 부자와 속물, 불특정 다수의 타락과 방탕을 거친 욕설로 비난했다. 그는 특히 부자들의 행태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표출한 것이다.

그러나 조승희의 행위를 증오범죄로 보기는 어렵다. 미국 언론 등 외신도 이 사건을 다중 총기살해(mass shooting)나 무차별 학살(massacre)로 칭하고 있을 뿐이다.

편견범죄(bias crime)로도 불리는 증오범죄는 인종이나 종교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에서 비롯된 폭력과 증오연설, 파괴행위를 일컫는다. 미국 KKK단의 흑인 공격과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학살)가 대표적이다.

워낙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미국에선 이 같은 증오범죄에 매우 예민하다. 상대방이 유색인종이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살인이나 폭행을 저지르는 행위가 워낙 빈번하기 때문이다.

미 의회는 1994년 강력범죄규제·집행법에 증오범죄 조항을 포함시켰다. 이 조항은 증오범죄를 ‘인종과 색깔, 종교, 국적, 종족, 성, 장애,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대상을 의도적으로 골라 자행한 범죄’라고 규정하고 일반 범죄보다 더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이 법 시행 다음 해인 1995년 한 해 동안 8000건에 가까운 증오범죄가 발생했고 이중 3000건 정도가 흑인에 대한 증오범죄였다. 이 밖에 유대인, 동성애자, 트랜스젠더(성전환자), 무슬림, 아시아계에 대해 증오범죄가 일어났다.

따라서 조승희가 독설을 쏟아낸 대상인 부유층은 증오범죄의 대상으로 볼 수 없다. 조승희의 동영상 독설은 사회 부적응자로서 개인적 좌절감에서 나온 것으로 정신적 편집증까지 겹친 비뚤어진 자기합리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 의회에서는 최근까지도 처벌을 대폭 강화한 증오범죄방지법 제정 여부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찬성론자들은 증오범죄가 희생자뿐만 아니라 특정 그룹 전체에 엄청난 고통을 주며 보복범죄로 발전하는 악순환을 낳는다는 점에서 더더욱 방지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가해자의 동기를 증명하는 일이 쉽지 않은 데다 그 개념이 너무 모호해 남용의 여지가 커서 오히려 사회 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고 반박한다. ‘생각의 범죄(thought crime)’를 엄벌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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