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격태격 美민주-공화 환경문제엔 한목소리

  • 입력 2007년 4월 1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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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이념으로 갈라져 힘겨루기를 계속해 온 미국 워싱턴에서 모처럼 일치된 목소리가 등장했다. “미국인은 석유 소비에 중독됐다.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앨 고어 전 부통령의 다큐 영화 ‘불편한 진실’이 2월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이 같은 기류는 뚜렷해졌다. 보수적인 연방대법원이 3월 정부의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권한을 인정한 것은 물론 공화당 강경파로서 ‘화석연료 규제’와는 반대쪽으로 여겨져 온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까지 이 대열에 동참했다. 그러나 구체적 태도에서는 미묘한 차이도 감지된다.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자’는 당위론에서부터 ‘테러를 일삼는 석유독재 국가의 배를 불려줄 순 없다’는 지정학적 전략의 강조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공화당 명사(名士)들의 동참=11일 워싱턴 조지타운대 환경토론회에는 아널드 슈워제네거(공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연사로 나섰다. 그는 배기가스량 한도 설정과 백열전구 사용 금지를 비롯해 캘리포니아 주가 선도하는 환경개혁의 중심에 서 왔다. 뉴스위크는 그를 이번 주 표지 모델로 등장시켰다.

그는 정부정책을 알리는 TV채널 C-SPAN으로 중계된 연설에서 “나무를 부둥켜안고 사는 별종(tree hugger)으로 비쳐온 환경운동가가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등장할 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루 전인 10일 미 상원 건물에서 열린 민주·공화당 토론의 달인들이 벌인 정책대결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2004년 대통령 선거 당시 “지구 온난화란 게 원래 실체가 약하다”며 민주당 공격의 선봉에 선 당사자. C-SPAN 동영상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이름인 뉴트(Newt)가 멸종 직전의 북극곰에서 유래됐다며 ‘환경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그는 다만 “정부가 탄소량 총량규제로 개입해선 안 된다. …창의적 기업이 앞장서도록 기술 선도기업에 세금 혜택을 주면 된다”며 시장을 통한 접근을 강조했다.

물론 공화당에선 이런 기류가 아직 압도적 주류라고 보기 어렵다. “지구 온난화는 다수의 견해이지, 불변의 진실은 아니다”라거나 “평균기온이 몇 도 올라간 요즘 같은 기후는 지구역사상 몇 번이고 있었던 만큼 당장 지구가 어떻게 되는 것처럼 말할 이유가 없다”는 반대론자도 상당수다.

▽테러를 돕는 석유소비 줄인다=이라크전쟁을 찬성했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8일 방송에 출연해 “다음 책은 환경과 테러를 연결해 쓸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석유가격과 민주화지수의 반비례 관계를 힘주어 말했다. 석유가격이 낮았을 땐 소련이 붕괴했고, 이란 대통령이 대화를 강조했고,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낮은 포복자세였지만,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서면서 석유독재가 시작됐다는 논리였다.

그는 “대체에너지 개발이 절실하다. 미국인의 석유 탐닉이 테러국가 독재자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어 줄 순 없다”고 강조했다.

▽숨죽인 대선후보들=이처럼 환경운동에 심취한 정치인의 특징은 2008년 대통령선거와 무관하다는 점. 오스트리아 태생의 ‘당대 이민자’로 대선후보 자격이 없거나(슈워제네거), 2004년 패배 후 불출마를 선언했거나(존 케리), 전업 환경운동가로 돌아섰거나(고어), 현역 정치인에서 물러난 지 8년이 지나(깅리치), 에너지 과소비에 길들여져 있는 미국 유권자를 당장 상대해야 할 사정이 없는 이들이다.

정작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등 민주당 유력 후보는 본질적으로 환경보호론을 지지해 왔으면서도 최근 강경한 표현을 자제하고 있다. 고어 전 부통령이 다큐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러분, 이젠 (에너지 소비를 즐기던) 생활방식을 버려야 할 때 아닌가요?”라는 ‘도발적’ 질문은 이들에겐 금기사항에 가깝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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