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페서의 계절]<5>선진국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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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7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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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에서 교수의 정치 참여를 막는 제도나 관행은 없다. 대학과 정치권의 건강한 교류는 권장 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진국 대학사회에서 교수가 정치에 한눈을 팔기는 쉽지 않다. 특히 선거철마다 권력과 정치권의 주위를 돌며 추한 모습을 보이는 한국형 ‘폴리페서’는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랜 세월 다져 온 전문성을 인정받아 정책 개발에 참여하며 공직에 진출하더라도 실무 간부로 가는 예가 많다. 일정 기간 공직을 수행한 뒤에는 대학으로 복귀해 강의 등을 통해 자신의 정책과 역할을 겸허하게 평가받는다.》

■미국

학계, 정책조언 ‘Yes’… 줄서기 ‘No’ 분위기

하버드대는 공직 진출 2년내 돌아와야 복직

“그때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클린턴 대통령의 전화가 걸려 와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케네디스쿨) 교수 강의에서는 이처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예가 많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국방부 차관보로 일했던 경험 때문이다. 나이 교수처럼 미국에서 학자가 행정부에 참여해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미국대학교수연합(AAUP)은 1969년 채택한 ‘교수와 정치 활동에 관한 선언문’에서 “교수는 시민의 일원으로서 선생과 학자로서의 의무를 일관되게 다할 수 있는 한 정치 활동을 할 자유가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 캠프와 사적 인연을 맺는 ‘줄 서기’를 미국 교수사회에서 찾아보긴 어렵다. 민주, 공화로 양분되는 이념적 스펙트럼의 한 영역에서 꾸준히 쌓아 온 전문성과 프로젝트 수행 등 대외 활동의 결과가 정치 참여로 연결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또 큰 조직을 맡아 성공적으로 이끌어 본 경력이 없는 교수가 바로 장관을 비롯한 거대 기관의 총책임자로 임명되는 예도 극히 드물다. 대부분 전문 분야와 관련된 실무 부서에서 차관보 이하의 중상위 실무 간부 직으로 참여한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예일대 해럴드 고 교수가 국방부와 법무부에서 차관보로 일한 사례뿐 아니라 해당 학문 분야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아 온 50대의 교수들도 장차관 등 기관장급이 아닌 자리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진입한 콘돌리자 라이스 현 국무장관은 스탠퍼드대의 러시아 전문가인 동시에 부총장으로서 뛰어난 조직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미쳐 온 전현직 간부들 가운데도 교수 출신 전문가는 많다. 국무부의 필립 젤리코 자문관, 로버트 조지프 비확산 차관, 백악관의 빅터 차 동아시아 담당 보좌관도 교수 출신이다. 이들은 예외적인 사례이며 대다수 교수는 정치 참여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교수 직 유지에만도 무한대의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한눈을 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한편 미국에서 교수들이 행정부에 진출할 때는 휴직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버드대의 경우 종신교수 자격을 얻은 교수가 행정부 진출로 학교를 비우면 2년까지 휴직을 허용한다. 2년 안에만 돌아오면 언제나 복직이 가능하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프랑스

교수자리 ‘하늘의 별따기’… 한눈 팔 여유없어

앙가주망 전통… 특정후보 측면서 지원 수준

프랑스는 지식인이 정치에 개입해 온(앙가주망) 전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식인이 현실 정치인으로 직접 변신하는 예는 드물다. 대학이 국립으로 운영되는 프랑스에서 정교수 수는 엄격히 제한돼 있다. 부교수는 아무리 뛰어나도 자리가 나지 않으면 정교수가 될 수 없다.

프랑스에는 교수가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지만 부교수든 정교수든 한눈을 팔 여유가 없다. 교수사회의 경쟁이 덜한 한국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그렇다고 교수가 정치나 행정에 뛰어드는 예가 전혀 없지는 않다. 이때도 지역의 유권자와 밀착해야 하는 국회의원보다는 장관 등으로 발탁되는 예가 간혹 있다.

교육부 관리는 교수가 맡는 예가 종종 있다. 2002∼2004년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 시절 교육부 장관을 지낸 뤼크 페리 씨는 파리 7대학의 철학 교수였다. 그러나 그는 국회의원, 다른 각료와 소통하는 능력이 떨어져 ‘함량 미달’ 평가를 받았다.

자크 랑 전 문화부 장관은 예외적이다. 낭시 대학의 국제법 교수였던 그는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에 의해 문화부 장관으로 발탁돼 10년간 재임했다. 그는 미테랑 전 대통령 시절 두 차례 좌우파 동거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장관직을 떠나 파리 10대학 국제법 교수로 갔다.

파리정치학교(IEP) 고등상업학교(HEC) 등 그랑제콜(대학 위의 대학으로 통하는 엘리트교육기관)의 경제통 출신 교수가 입각한 예는 꽤 있었다. 세골렌 루아얄 의원과 사회당 대통령 후보직을 놓고 경선을 치렀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재무장관이 대표적이다. 교수가 대선 캠프에 참가해 공을 세워도 바로 장관으로 입각하는 예는 찾기 힘들다. 대부분의 교수는 특정 후보를 이론적으로 지원한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파리= 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일본

각료 겸직 법으로 금지… 교수직 내놓아야

선거 출마땐 ‘휴직 처리’ 해주지만 한시적

일본에서 교수들이 총리 경선 캠프에 참여해 집권 이데올로기와 정책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예는 흔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집권 청사진인 저서 ‘아름다운 나라’ 내용도 교수들의 머리에서 나왔다.

하지만 주요 공직을 맡기 위해서는 의원 직이 있어야 하는 정치 관행상 교수가 집권 후 주요 공직에 취임하는 사례는 드물다.

아주 예외적인 성공 사례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정권에서 경제재정상 금융상 총무상을 역임하며 ‘경제 개혁의 사령탑’ 역할을 한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게이오(慶應)대 교수.

2001년 4월 고이즈미 정권의 출범과 함께 각료가 된 그는 총리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부실 채권 문제를 잘 처리해 경제 부활의 기틀을 닦았다. 2004년에는 참의원 의원에 당선됐다.

총리의 신임이 너무 두터운 나머지 일각에서는 그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9월 고이즈미 정권 퇴진과 함께 참의원 직을 내던지고 교단으로 복귀했다.

일본에도 교수가 휴직을 하고 고위 공직에 취임하는 예가 간혹 있다. 그러나 출마 등을 통해 정치인으로 변신할 때는 퇴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각료는 겸직이 금지돼 있어 교수 직을 내놓아야 한다.

또 교수가 공직 진출을 이유로 수업에 지장을 주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5년 10월 고이즈미 내각의 소자화(少子化·저출산) 및 남녀공동참여 담당상으로 기용된 이노구치 구니코(猪口邦子·여) 중의원 의원이다.

그는 2005년 9월 조치(上智)대 법학부 교수 직을 휴직하고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학교는 이듬해 3월까지는 휴직 처리를 해 주었으나 이런 ‘특혜’도 한 차례로 끝이었다. 그는 교수 직을 내놓았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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